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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금낭비 주범? 보도블록, 당신이 모르는 것…
“보도블록 분야의 잘못된 관행을 보고 우리나라 건설분야의 건전성을 진단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건설 전 분야를 온전히 비추는 전신거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작은 손거울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본다. 갑과 을은 상충하는 이해관계 속에 있어야 한다.(…) 둘의 관계는 절대 인간적이어서는 안된다.”
수시로 갈아엎고 새로 깔지만 ‘부실’ 오명
86AG·88올림픽때 보행환경 바꾸려 도입
시공기술, 선진국 덴마크 등과 30년 차이
수백개 업체 입찰 담합 견고한 ‘카르텔’
관련자료·현장 시공기록 찾아볼 수 없어


길을 걷다가 보도블록 때문에 분통을 터트린 경험이 누구나 한번 쯤 있게 마련이다. 깨지고 울퉁불퉁해 넘어질 뻔하거나 비가 오면 맨홀 주변에 물이 고여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 혹은 하이힐이 끼여 신발이 벗겨지는 난감한 상황 말이다.

수시로 보도블록을 들춰내고 새로 까는데 이런 일은 반복된다. 아까운 세금만 낭비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보도블록은 왜 예산 낭비와 부실시공의 주범이 된 것일까? 일본은 30년이 지나도 멀쩡한데 우린 왜 해마다 뒤집어 엎는 것일까? 
보도블록연구원 박대근씨가 쓴 보도블록에 관한 첫 기록물이랄 수 있는 보도블록 에세이 ‘보도블록은 죄가 없다’(픽셀하우스)는 우리가 몰랐던 보도블록에 대한 모든 것을 들려준다.

보도블록은 아스팔트 차도 포장과 달리 보행자를 위한 길에 주로 시공된다.
지은이에 따르면 보도블록의 잦은 교체엔 이유가 있다. 상하수도관 교체나 도시가스 공사, 공중선 지중화, 통신선로 공사, 신규건물이 들어설 때 등 시도 때도 없이 파헤쳐지고 메꾸어진다. 아스팔트로 돼 있다면 절단을 하고 시설물을 설치한 뒤 복구해야 하지만 소량 공급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복구하더라도 양생기간이 필요해 신속한 개방이 어렵고 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등 친환경적이지 못한 점도 차이다.

국내 보도블록의 역사는 얕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선진국 수준의 보행환경을 만들어보자고 시행된 게 그 시작이다. 튼튼함이나 정밀시공은 뒷전인 채 미관에만 신경을 썼고 그 역사는 2008년 서울거리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정밀시공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까지 30년을 이어갔다.

1982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보도블록 하나 제대로 깔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덴마크 기술자가 와서 보도블록의 생산과 시공에 직접 참여해 시공한 첫 작품이 코끼리 열차가 다니는 서울대공원이다. 30년전에 시공한 보도블록이 지금도 상태가 양호하고 꼼꼼하다. 보이지 않는 기술격차다.

지은이는 “보도블록의 시공기술은 30년 이상 차이가 난다”며, “ ‘알지 못해서’ 또는 ‘노력해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기술격차가 있는가 하면, ‘노력 부족’ 혹은 ‘의도적인 부실시공’에 의한 기술격차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은이가 지적하는 우리의 보도블록 문제는 후자 쪽에 가깝다. 가령 잘못된 관행으로 유압식 절단기 대신 먼지와 소음이 많이 발생하는 전동절단기를 사용하는 식이다.

지은이는 잘못된 블록포장의 사례도 들려준다. 공존도로인 덕수궁 돌담길 차도에 설치된사괴석을 아스팔트로 교체한 일이라든지 고속도로 휴게소의 부끄러운 블록포장 파손 3종세트 등 민낯을 파헤치며 십수년이 지나도 말끔한 일본과 독일의 블록포장 차도와 대조한다.

문제는 여전한 보도블록 자재 납품, 시공입찰과 관련된 진흙탕 싸움이다.

시공업체 입찰은 예정가 이하를 써낸 업체 중 최저가를 써낸 곳을 선정하는데, 참여 업체끼리 사전에 의논해 일정 가격을 써내는 식으로 담합이 이뤄진다.

수십 개 또는 수백 개의 업체가 똘똘 뭉쳐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해 낙찰을 받는 것이다, 낙찰 받은 업체는 서류상으로만 계약 당사자가 되고 실제 현장에서는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돌아가며 일을 수행하게 된다. 순수한 마음으로 입찰에 참여한 다른 업체는 들러리만 서는 꼴이다. 현장소장이나 시공사 직원도 돌아가며 일을 맡는다.

지은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건설업체가 보도블록을 구매해 시공하는 게 아닌, 보도블록 제조사가 납품과 시공을 한꺼번에 발주받아 공사를 시행하는 통합발주를 제안한다.

보도블록도 진화하고 있다. 최근 환경문제로 수요가 늘고 있는 빗물을 빨리 빨아들이는 투수블록, 열섬 현상을 막아주는 차열블록, 걷고 싶은 길을 만드는 점토바닥벽돌, 보행자와 자동차를 함께 고려한 차도블록,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 등 기능과 역할이 다양화하고 있다.

우리 생활과 밀접하지만 알 수 없었던 블록포장에 대한 궁금증을 확실히 풀어준다.

지은이는 보도블록에 대한 자료를 찾아나섰지만 그 수많은 시공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록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건설현장 어디에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보도블록을 향한 비난은 결국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자동차는 보도 위에 당당히 올라가고 시공현장에선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보도블록만 탓할 수 없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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