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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최악의 임금 인조의 파주장릉 빗장 열린다…‘반면교사’될 듯

  • 기사입력 2018-08-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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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조선시대 최악의 임금으로 연산군과 선조, 인조, 철종 등이 거론되는데, 그 중에서도 쿠데타로 집권한 뒤 국제정세를 오판해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한 인조를 최악으로 평가하고 역사의 ‘반면교사’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인조는 훌륭을 뜻을 가진 자식들의 앞길 조차 제대로 닦아놓지 않고 오히려 상처를 입힘으로써 조선말까지 국운을 회복하지 못하게 한, 원인제공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이 당파, 저 당파에 흔들리고, 이 후궁, 저 부인 얘기에 이성적 판단을 하지도 않았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와 효종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있었지만 귀국후 부국강병을 꾀했다.

소현세자는 광해군 못지 않은 외교술로 청나라를 안심시키고 나라를 강하게 만들 대책을 암중모색하지만, 귀국한지 얼마되지 않아 독살로 의심되는 죽음을 맞는다.

소현세자에 대해 백성들이 열화같은 지지를 보내자, 청나라 장수앞에서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당했던 인조는 질투심을 느꼈다. 때마침 자기 자식(숭선군)을 임금에 앉힐 욕심을 가진 후궁 소용 조씨가 인조의 총애를 등에 업고 소현세자의 독살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다. 조용조씨는 이후 폐서인의 중징계를 받았다.

소현세자 부인 민회빈 금천강씨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소용 조씨의 모함으로 폐서인까지 억울함을 당한다. 훗날 숙종이 자신의 큰할머니인 민회빈을 ‘빈’으로 복권시킨다.


인조는 형의 죽음 이후 세자가 된 둘째아들 효종의 길도 닦아주지 않았다. 효종은 어떠한 전략도 갖지 못한 인조의 방치와 간신배들의 농간 속에 북벌이라는 큰 뜻을 이루지 못했고, 대동법과 상평통보의 전면적 사용 등 미완의 경제개혁에만 손을 댄채 의문의 요절을 당했다.

인조가 죽은 뒤, 생전에 점지해놓은 파주 운천리에 묻혔다.

그러나 한동안 이 인조의 묘엔 뱀과 전갈이 창궐했다.

심지어 뱀들은 인조의 운천리 능의 능침 석물 틈에 집까지 지어 상주했다. 결국 갈현리 현재 장릉(長陵, 사진)으로 이장하게 된다.

문화재청이 인조와 그의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가 합장된 파주 갈현리 장릉을 9월 4일부터 전면 개방(유료)한다.

파주 장릉 개방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위정자의 실책을 반추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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