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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이러려고 독려했나…‘비운’의 임대사업등록제
[6월말 기준 등록임대주택 분포. 수도권에 65% 이상이 집중돼 있다.]

집권 1년을 갓 넘긴 문재인 정부의 주거 복지 정책이 급변침하고 있다. 주택 시장 상황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핵심 공약들을 줄줄이 수정해야할 처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임대사업등록제의 혜택 축소는 이러한 상황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임대사업등록제는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해 전월세시장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에서 설계된 제도다. 다주택자가 임대사업등록을 하면 4년 혹은 8년간의 의무임대기간 동안 임대료를 연간 5% 인상 올릴 수 없고, 세입자가 재계약을 원할 경우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전월세 안정제도는 긍정적 효과만큼이나 부작용이 많아 논란을 야기할만한 제도였는데, 정부는 임대사업등록제를 통해 우회 도입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논란을 피할 수 있었다. 전임 박근혜 정부 기간 전세난 때문에 계약 갱신때마다 보증금이 수억원씩 올라 ‘미친 전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주택 서민들이 고통받았던 것을 떠올리면 그 나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공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이 바뀌면서 이 제도는 거의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전세시장은 1년 넘는 장기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8월 기준 올해 서울 전셋값은 0.04% 하락했다. 지난해에는 1.36%만 올랐다. 전월세상한제의 상한선인 5%에 훨씬 못미친다. 이제는 세입자가 계약 연장이 거절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다. 정부는 매월 임대사업등록자가 늘었다고 자랑하지만, 막상 시장에서는 ‘그래서 뭐가 좋아졌다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가질 만했다.

대신 이제는 ‘미친 집값’ 잡기가 더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올해 서울 주택 누적 상승률 4.13%라는 평균화된 수치가 비현실적일만큼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를 보면 불과 한두달 사이 수억원이 오른 아파트들이 허다하다.

문제는 임대사업등록제는 전세시장 안정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집값 잡는데는 도리어 독이 된다는 것이다. 임대사업등록을 하면 해당 주택은 4년 혹은 8년 동안의 의무임대기간 동안 같은 임대사업자끼리의 매매만 가능하다. 이는 다주택자들이 시중에 매물로 내놓는 주택 수를 줄임으로써 주택 공급 감소 효과를 가져온다. 등록된 임대주택의 65%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도권 주택 시장의 공급 감소 효과가 크다.

게다가 정부는 임대사업등록을 유도하기 위해 등록 사업자에게 집값의 8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주택자들이 집을 더 많이 사들일 수 있도록 했고,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종합부동산세 과표 합산 배제, 건강보험료 등의 혜택까지 줘 투자 이익도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부동산 투기에 꽃길을 깔아줬다”라고까지 비판할 정도다.

결국 정부는 임대사업등록제의 혜택을 축소하겠다는 선언으로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접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했다는 비판이 커지자 ‘일부 과열지역의 주택에 한해서’라는 단서를 달아 여론을 잠재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과열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굳이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 이 제도를 독려할 필요도 없다.

현 정부 집권 기간 동안은 서울이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에서 풀려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임대사업등록 독려정책은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여겨진다. 정책 일관성을 잃은 데 더해, 시장상황이 바뀐 지 한참인데 뒤늦게 조치를 취한 것까지 정부의 잘못으로 보인다.

다만 시장은 늘 움직인다. 지금은 안정된 전월세 시장도 언젠가는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 그 때는 다시 임대사업등록 독려를 위해 어떤 혜택을 줘야 하나 고민하게 될 지 모르겠다. 그때는 정부의 조치가 지금처럼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p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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