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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황용사에서 투조 금동귀면 첫 출토
경주 황용사에서 발굴된 투조 금동귀면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경주 동대봉산 절골의 황용사에서 투조 금동귀면이 처음으로 출토됐다.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제정스님)는 문화재청(청장 정재숙)과 함께 2013년부터 전국의 (비지정)폐사지를 대상으로 ‘중요 폐사지 발굴조사사업’을 벌이던중 경주 황용사에서 이같은 성과를 얻었다.

황용사는 경주 보문단지에서 감포 방면으로 넘어가는 동대봉산(옛 은점산) 절골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황룡사지와는 다르다.

발굴 유물은 주요 출토유물은 걸이가 있는 부조 보다 정교하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투조 금동귀면(문고리를 달 수 있는 도깨비 모양의 금박 조각물) , 석불, 소조불, 용두편, 하대석 편 등이다.

조사결과, 황용사는 계곡 주변에 크고 작은 석축 대지를 조성한 후 건물을 축조한 산지형 가람으로 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 건물지 5동, 탑지, 축대, 석렬 등 다양한 시대의 유구가 중복 출토됐다.

경주 황용사 쌍탑과 금당지

특히, 현재 쌍탑이 남아있는 구역의 경우 고려시대와 관련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지 않아 고려시대에는 주변의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중창되는 등 변화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황용사의 사역이 현재 추정 사역보다 훨씬 넓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에 의하면 황용사는 선덕여왕 2년(633년)에 창건됐다. 당시 명칭은 황둔사(黃芚寺)라고 불렸으며, 소성왕 대에 황용사(黃龍寺)로 바뀌어 이후 중창, 중수 등의 과정을 거쳤다.

조사 전부터 황용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쌍탑을 비롯해 고려시대 승탑, 초석, 석축들이 흩어져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알려진 것에 비해 그동안 황용사지는 정비 및 보수가 진행되지 않았으며 조사 착수 당시에도 여전히 산죽, 수목 등이 유구와 뒤엉킨 채 일부는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는 황용사지에 대한 조사가 시급함을 인지하고 사역과 성격을 확인하고자 2018년 7월 추정사역에 대한 폭넓은 시굴조사를 하고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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