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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00개 냄비·프라이팬 민들레로 피어나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 최정화 - 꽃, 숲’展


미술관 앞마당에 높이 9미터, 무게 3.8톤의 민들레가 피어났다. 샛노란 꽃도 하얀 홀씨도 아니다. 알록달록 화려한 민들레는 쓰다 버린 양은 냄비, 프라이팬, 플라스틱 바구니, 그릇 7000여개가 모여 탄생했다. 지난 3월부터 공공미술 프로젝트 ‘모이자 모으자’를 통해 각 가정에서 쓰임을 다한 생활용품을 수집한 결과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 최정화 - 꽃, 숲’전을 지난 4일 공개했다. MMCA 서울 미술관 마당과 5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엔 신작 ‘민들레’를 비롯 ‘꽃, 숲’, ‘어린 꽃’, ‘꽃의 향연’이 선보인다. 일상에서 날마다 만나는 물건들이 작가의 손길을 거쳐 그럴듯한 예술품으로 변한 현장을 만날 수 있다.

“성과 속은 하나다. 빛과 그림자, 볕과 그늘도 하나다. 산 풍선도 풍선이고 죽은 풍선도 풍선이다. 사람도 그렇다”

전시장에서 만난 최정화 작가는 이처럼 강조했다. 예술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임을 역설한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축가, 설치작가, 전시 연출 등 시각예술 분야를 종횡무진하는 그에게 고급예술과 대중문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마르셸 뒤샹이 남성 소변기를 전시장에 들고 와 설치했을 때부터, ‘경계 지우기’는 현대미술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세차장에서 차를 닦던 청소솔, 다 닳아 그 쓸모를 잃어버린 솔은 미술관 전시장에서 하나의 오브제로 탄생했다. 거꾸로 선 철 솔은 세월의 무게를 입어 산화한 채로 덤불처럼 섰다. 플라스틱 바구니, 유리잔, 바다에 떠다니던 스티로폼 부표도 수직으로 쌓여 저마다의 탑을 이룬다. 이렇게 146개의 ‘꽃 탑’이 모여 작은 숲을 이룬다. 제 5전시실에 들어선 ‘꽃, 숲’이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부터 현대의 플라스틱 바구니까지, 유럽 어느 곳에서 온 나무함부터 청계천의 밀대까지…시공을 가로지른 유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탑으로 쌓인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 채는건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나오는 순간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것이다. 설명 없이도 뭔가 느껴서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양한 오브제 중 하나는 관객 눈에 들 것이 분명한, 이른바 ‘우주적 비빔밥’이다. 전시장을 돌다보면, 꽃 탑들의 뒷 면 흰 장막이 쳐진 길에 이른다. 조명을 받은 ‘꽃 탑’은 물성이 휘발된 채 그 실루엣만 장막에 펼쳐진다. 쓰다 버린 물건들이 맥락에서 멀어져, 오로지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최 작가는 ‘명상의 길’이라고 소개했다.

버려진 물건이 예술품으로 변했는데도 작가는 “나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예술이라고 생각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사물을 분류하고 구분지으려는 고정관념을 순식간에 흔들어 놓는다. “작가의 역할, 예술의 역할은 예술을 빼면 예술이 된다는 것이다. 일상이 예술이다. 반예술, 비예술이 예술을 만든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간 매년 1명의 한국 중진작가를 지원하는 연례 프로젝트다. 문화예술과 기업이 만나 상생효과를 창출한 대표적 기업 후원사례로 자리매김하면서 한국 미술계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최정화 ‘꽃, 숲’전은 내년 2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v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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