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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정수일 지음, 창비)=육·해상 실크로드를 누빈 문명교류학자 정수일이 종착지로 아프리카를 택했다. 50년대 중국 국비장학생으로 이집트 카이로대학에서 수학한 뒤 외교현장에서 아프리카를 만났던 그에게 아프리카는 고대문명의 화려함과 400여년동안 진행된 노예무역의 희생의 땅, 설욕의 땅으로 인식된다. 아프리카에 대한 글을 쓰겠다는 마음의 빚은 지난 2014년부터 집중 기획탐사를 통해 이번에 빛을 보게 됐다. 특히 비문명의 땅이 아니라 문명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의 연장선상에 아프리카를 놓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책에는 지금껏 쉽게 접하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고대문명사부터 열강의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한 아프리카인의 투쟁사까지 세계사에서 비껴있는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특히 그가 만나고 경험한 생생한 아프리카의 역사적 순간과 지도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채롭다. 대중연설 현장에서 청중이 던진 신발을 맞고도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나셰르, 제1차 아시아-아프리카 인민결의 대회에 참여한 북한 대표단 중 한국 고고학계 1세대인 도유호 선생과의 만남, 모로코 국왕에게 중국 대사의 신임장 봉정식 통역을 하면서 겪은 일화 등 개인이 겪은 현대사의 한 장면들이 놀랍다. 콩고 독립운동의 영웅 루뭄바, 탄자니아의 국부로 추앙받는 줄리어스 니어레레 등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을 통해 아프리카의 현실, 그리고 문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전쟁 이후의 한국사(이상훈 지음, 추수밭)=전쟁 이전과 이후는 확연히 달라진다. 사회 시스템과 환경, 문화 등 모든 것이 바뀐다. 이 책은 고조선의 멸망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까지 한국사의 대표적인 전쟁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초점을 맞췄다. 한 예로 김부식은 서경을 공략, 묘청의 난을 평정한 뒤,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자는 ‘서경역적’이라는 네 글자를 이마에 새겼고, 그 다음에해당하는 자는 ‘서경’ 이란 두 글자를 새겨 표나게 했다. 한국사에 처음 등장한 이 문신형은 이후 문신을 받은 이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문신이 형벌이 아닌 유행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은 큰 변화를 겪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종착지는 기존 시스템에 대한 보수였다. 그 결과 종갓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늘날 우리가 전통으로 알고 있는 상당수 문화가 이 때 생겨난 것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과 미국이 맺은 가쓰라 태프트 밀약은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정당화함으로써 합병의 길을 터주게 된다. 이후 일본은 한반도를 문화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담배와 홍삼을 도구로 삼는다. 그 첫 신호탄은 ‘매일신보’에 실린 신여성이 당당하게 흡연하는 광고. 이후 조선은 양담배를 문 끽연가들의 세상이 됐다. 책은 전쟁을 기회로 살리거나 혹은 독이 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전쟁 직후의 시간들을 들려준다.

비바, 제인(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문학동네)=“그 여자애는 하원의원이 유부남이라는 걸 알면서도 유혹했죠. 내 보기에 그 여자앤 권력과 스포트라이트를 향해 달려든 거예요. 아니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행실이 단정치 못한~”“제 가족, 특히 아내와 아이들이 입은 상처에 대해서는 무척 미안합니다만, 위법한 일은 없었다는 점을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얼마전, 한 유력 정치인의 미투를 연상시키는 이 글은 베스트셀러 ‘섬에 있는 서점’으로 잘 알려진 작가 개브리얼 제빈의 소설 ‘비바, 제인의 한 대목이다. 소설은 20대의 정치 지망생 아비바 그로스먼이 하원의원 에런 레빈의 인턴으로 일하던 중 그와 불륜관계를 맺고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인생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작품은 다섯 개 장으로 이뤄져 있고 장마다 화자가 다르다. 한 때의 어리석은 선택을 만회하려는 주인공과 딸을 막아서기에 급급한 그녀의 어머니, 또 다른 여성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의 아내 등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담아낸다.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화자들의 얘기는 1인칭으로, 때로 3인칭으로, 이메일, 게임북 형식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서술된다. 소설의 분위기는 의외로 생기롭다. 유머러스한 상황과 속도감 있는 문체, 다양한 서술 형식 등이 일조한다. 한 때의 실수로 한 인간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고 그녀에게 필요한 건 비난이 아니라 응원이라는 작가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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