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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을 믿지 않으면 도덕적 삶을 살 수 없는 걸까
“무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종교를 증오하거나 종교를 문젯거리로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종교인은 그저 정치의 영역에서든 사적인 삶에서든 종교를 해결책으로 보지 않을 뿐이다. (…)대부분의 무종교인은 종교를 인정하고 인정할 수 있다. 심지어는 때때로 종교의 다양한 면들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종교없는 삶’에서)
사회학자 필 주커먼의 ‘종교없는 삶’
무종교·세속주의는 전세계 새로운 현상
종교 보수성·여성노동자 증가 등 영향

무종교인이 느끼는 죽음 등 의문 통해
종교 의미·인간성의 본질 등 이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종교인구 조사결과를 보면 무종교인이 56.1%로 종교인보다 13% 포인트 많다. 10년 전보다 종교인이 무려 300만명이 준 수치다. 불교 신자의 급격한 감소의 영향이 컸다. 미국의 경우, 지난 25년간 무종교인의 수는 2배 가까이 늘었다. 유럽의 탈종교화는 더하다. 네덜란드의 경우 무종교인이 40%를 넘고, 영국은 인구 절반이 종교적 정체성이 전혀 없다. “이 시대의 가장 활발한 종교는 무종교다”는 말이 실감난다.

사회학자 필 주커먼은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고 있다며,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늘어난 세속주의의 규모와 영역은 정말로 새로운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주커먼은 저서 ‘종교없는 삶’(판미동)에서 사람들이 종교에서 벗어나는 본질적인 이유를 정치적·사회적인 데서 찾는다. 미국의 경우 우선 우파 정치인들과 보수적 기독교인의 연대가 좌파와 온건파 미국인들을 기독교로부터 소외시켰다고 주장한다. 가령 이들은 낙태 불법화, 동성애자 권리 반대, 줄기세포 연구 반대, 학내 기도 지지 등의 이슈에 서로 공조했다. 가톨릭교 사제들의 소아성애 스캔들이 일으킨 환멸과 반작용은 또 다른 원인이다. 전적으로 사회적인 이유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여성 임금 노동력의 현저한 증가다. 집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날수록 본인과 가족의 종교 참여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도 사회의 무종교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은이는 지금까지 주로 종교연구가 종교인에 치중해왔으나 이제 무종교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방향전환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그래야 종교의 의미는 물론이고 인간성의 본질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무종교인들이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의문과 갈등에 구체적이고 납득할 만하게 답변을 내놓는다.

가령 종교 없이 살아도 괜찮은 건지, 자녀를 종교 없이 키워도 될지, 종교 없는 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고난이나 큰 병을 맞닥뜨릴 때 종교 없이 어떻게 대처할 지 등 수많은 사례와 인터뷰, 연구결과를 통해 들려준다.

종교가 없는 삶을 생각할 때, 개인이 어떻게 도덕적인 삶의 방향을 찾느냐는 우선적인 연구대상이다. 흔히 종교의 가르침은 살아가는 방향타가 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종교 없는 사람들에게 도덕성은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들을 대한다는 의미”라며, “무종교인들이 더 생명을 깊이 존중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공감하고 공정한 결과를 갈망하며 불의와 잔인함을 증오하는 윤리적 태도와 이상을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들을 제시한다.

무종교적 도덕성은 공감에 의한 호혜라는 종교보다 더 근본적인 황금률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스 캘리포니아대 베른 벵슨 교수의 최근 무종교적인 가정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가장 무종교적인 가정들이 높은 수준의 연대감과 정서적 친밀감을 보여주고 부모들은 그들의 가치를 잘 표현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종교가 없는 부모는 복종보다는 자율성을 가치 있게 여기고 이를 자녀들에게 함양시킬 가능성이 컸다.

종교가 삶의 고난을 위로하고 치유해 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절대적인 신에 대한 믿음과 헌신적이고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커뮤니티를 통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친구나 가족, 혹은 자신에게 의지하면서 힘든 시기를 견뎌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인간적인 연대나 자기 확신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극의 한복판에 있을 때 무종교인은 불리할 수 있다. 지은이는 바로 이 지점에 무종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일깨운다.

무종교인과 종교인의 구분이 사실 뚜렷치 않다는 지은이의 지적은 귀기울일 만하다. 종교적인 사람도 어떤 면에선 무종교적이고 무종교인들도 어느 면에서는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없어도 유령이나 환생을 믿기도 하고 종교 활동은 안해도 특별한 믿음이 있는 이들이 있다. 한 때는 종교적이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뿐이며 삶의 시기마다 다른 방향을 가기도”하는데, 이를 스스로 잘 이해하면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책은 종교인이든 무종교인이든 종교없는 삶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폭넓은 사유와 함께 실제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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