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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읽는 선비와 세개의 칼을 찬 무사…조선과 일본은 얼마나 다른가?
1597년 정유재란 때 포로가 돼 이후 3년간 일본에 억류생활을 한 ‘간양록’을 쓴 강항은 일본 무사에게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나 만물이나 마음이 같은 법인데, 일본 사람들이 유독 죽음을 즐기고 삶을 싫어하는 것은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죽음을 즐기고 삶을 싫어하는 것’(낙사오생:樂死惡生)은 당시 조선 문인들이 본 일본 무사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당시 조선은 200년간 단일한 통치이념 아래 평화를 누리고 있었던 반면, 일본은 400년간 전쟁을 치러온 점에서 조선과 일본은 너무 달랐다. 글 읽는 선비와 세 개의 칼을 찬 무사란 극명한 차이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재일교포 3세로 일본과 한국에서 수학하고 현재 중국 중산대학에 몸담고 있는 박상휘는 임진왜란 직전인1590년부터 1764년까지 170여년간의 일본 견문기 35종을 바탕으로 조선의 일본에 대한 인식변화를 추적, 조일관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지은이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로 둘의 생명관을 꼽는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주희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겐 자연스러웠다. 반면 전쟁 속에서 삶을 이어온 일본은 죽음으로써 의를 지키는 무사사회였다, 상대를 죽이거나 방어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자결할 목적으로 세 개의 칼을 몸에 지녔다.

이런 대일본관은 160년이 지난 1763~64년의 계미통신사 서기로 일본을 방문한 원중거의 글을 보면 바뀌게 된다. 원중거는 무기사용이 금지되고 삶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바뀌었다며, 고착된 이미지를 수정해야 한다고 보고한다. 원중거는 일본이 조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기록했다. 일본민중은 조선이 언젠가 보복할 보복할 거라는 ‘구세필보(九世必報)’의 인식이 퍼져 있었다.

조선 사절들이 남긴 일본견문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일본 정치제도와 사회구조에 대한 기록으로, 그 중 일본의 병농분리에 주목했다. 일본은 군사와 농민을 분리 운영해 항시 군사동원이 가능했다. 또한 대외무역과 이를 통해 축적한 부, 장인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바탕으로 한 기술력에 주목했다. 일찌기 조선 기술자를 데려가 선진기술을 배워야 했던 낙후한 일본은 17세기에 이르면 조선사절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설비와 기술을 보유하게 된다. 1748년 사행원 홍경해는 특히 일본 조선술의 발달에 놀라워하며 우리나라 전함의 훈련은 이것과 비교하면 아이들 장난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글을 몰랐던 일본이 1603년 토쿠카와 막부가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1682년 사행에선 어린아이가 붓을 잡고 10세 아이가 시를 짓는 모습도 사절단을 놀래켰다. 사절단은 일본에 문과 도가 생겼다며, 평화공존의 희망을 품었다.

책은 조선과 일본 양쪽 기록과 기존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당시 양국간 인식을 폭넓게 조망했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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