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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의 실패’ 나무늘보가 사실은 ‘정글의 고수’였다?
“우리 세대를 포함해 모든 사람은 언제나 자기 세대가 윗세대보다 동물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짚어두고 싶다. 아직까지 동물학의 많은 영역은 교양있는 추측에 불과하다.”(‘오해의 동물원’에서) 사진은 나무늘보.
동물에 관한 허황된 믿음과 진실의 역사
루시 쿡 “동물 이해하려면 맥락을 봐야”

느린보로 생존경쟁서 뒤떨어진 동물로 인식
정글서 살아남기 위한 ‘에너지 절약법’탓
비버의 해리향은 식물과의 투쟁 산물


흔히 나무늘보는 이름이 그렇듯 느리고 멍청하고 지저분한, 자연의 생존경쟁에서 뒤떨어지는 동물로 여겨지곤 한다. 온몸에 벌레가 둘끓고 털은 이끼가 낀 채 온종일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달팽이만큼 느리게 움직이는 나무늘보에게서 뛰어난 동물적 감각이나 특성 같은 걸 찾아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이자 자연사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루시 쿡의 생각은 다르다. 나무늘보야말로 정글의 고수다. 나무늘보의 비범한 인내력은 아메리카 정글의 혹독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랜 세월 터득한 에너지 절약법라는 것이다. 쿡은 동물을 이해하려면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옥스포드대에서 리처드 도킨스를 사사한 그가 쓴 ‘오해의 동물원’(곰출판)은 동물에 관한 허황된 믿음과 진실의 역사를 흥미롭게 펼쳐보인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연감을 편찬하면서 뱀장어때문에 애를 먹었다. 아무리 해부해봐도 성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뱀장어는) 짝찟기를 통해 태어난 것도, 알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라 진흙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해 지구의 내장에서 태어났다”고 기술했다. 뱀장어의 생식소를 찾기 위한 노력은 무려 2000년이나 이어졌고, 과학자들의 황당무계한 가설 역시 길게 이어졌다.

우리가 강바닥에서 보는 뱀장어는 네 번의 환골탈태 중 한 단계에 불과하다. 유럽뱀장어는 대서양에서도 깊이가 가장 깊고 염도가 높은 사르가소해의 해저 숲에 떠다니는 알에서 일생을 시작한다. 이 알은 유럽의 하천을 향해 3년동안의 긴 여정 끝에 적당한 강바닥 진흙 속에 자리잡고 수십년을 살아간다. 대양의 어두컴컴한 심연으로 돌아가는 6000킬로미터의 고된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몸을 살찌운 뒤.대륙붕 깊은 곳에 가 알을 낳고 죽는다. 이런 모호한 기원 덕에 뱀장어는 고대사회에서 신화적 존재로 여겨져왔다.

비버는 동물에 관한 미신 중 허무맹랑하기로 으뜸이다.고대부터 비버의 고환은 효능이 뛰어난 약제로 귀한 대접을 받았는데비버는 사냥꾼에게 쫒길 때면 무시무시하게 크고 노란 이빨로 스스로 거세해 순순히 넘김으로써 목숨을 부지한다고 전해진다. 중세의 우화집에서 이런 전설은 적절한 교훈을 남겼다. 평화로운 삶을 원한다면 모든 악행을 끊어내 악마에게 줘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설은 유럽에 만연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비버의 전설에 관심을 가졌다.

비버의 진실을 밝힌 이는 프랑스 의사 기욤 롱펠레였다. 롱펠레는 1566년 사망하기 얼마 전 비버의 몸을 해부해 비버의 항문 근처, 요도와 연결된 한 쌍의 배 모양을 한 해리향낭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고환과 똑같아 종종 고환이 네 개 달린 돌연변이수컷으로 보고되기도 했던 특유의 기관이다. 해리향은 그 특유의 자극적 냄새 때문에 고대 세계에서 출산 유도제, 히스테리를 다스리는 강장제로 인기가 높았다. 오늘날 케이크와 아이스크림까지 각종 디저트에 바닐라 향을 내는데 사용되는 해리향이 놀라운 건 비버와 식물간의 싸움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200~300만년 동안 나무를 갉아온 길고 성공적인 수생 설치류의 계보를 타고 비버는 나무의 화학물질에 맞서 독성물질을 분리하고 재활용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는데, 해리향에 포함된 아스피린의 주성분인 살리신산을 비롯, 카테콜, 페놀 등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 등은 모두 식물에서 빼낸 것이다.

동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만화에 나오는 귀여운 외모로 인기인 대왕판다는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기능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로 여겨져왔다. 성에 대한 무관심과 비정상적인 채식으로 우스꽝스럽게 여겨지지만 이런 이미지는 현대판 미신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유순하고 어수룩한 연기를 펼치지만 판다는 인간보다 적어도 세 배는 오래 현재의 모습으로 버텨오면서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진화의 생존자란 것이다. 후각이 매우 발달해 극도로 짧은 배란기도 야생에서는 번식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개체군의 크기를 정확히 통제하기 위한 진화적 적응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뒷골목을 어슬렁 거리며 남의 포식물을 빼앗을 궁리나 하는 비겁한 겁쟁이로 불리는 하이에나에게 들씌워진 이런 이미지는 한편으론 똑똑한 뇌를 가진 굉장히 효율적인 동물이란 소리가 된다.

지은이의 탐색은 종횡무진이다. 인간의 동물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동물은 자연 속에서 어떻게 종을 보존하며 진화했는지 가로세로 오가며 풍부한 에피소드와 발랄한 글쓰기로 동물의 신비를 밝혀 나간다. 특히 인간의 좁은 프리즘으로 동물의 세게를 들여다보는 데서 벗어나 각각의 동물이 사는 법을 자연 속에서 이해하고 관찰해나간 점이 돋보인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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