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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전역의 기립박수 ‘전쟁터로서의 여성’ 국내 초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0주년 기념

보스니아 전쟁과 여성, 한국 100년사와 흡사

18~20일 대학로 눈빛극장…관객과의 토론도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두 여자가 만난다. 보스니아 내전을 온몸으로 겪어낸 도라와 미국인 정신분석학자 케이트.

케이트는 무언증에 걸린 도라의 주변을 맴돌며 도라가 마음문의 빗장을 열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마음에 노크한다. 케이트가 도라에게 건네는 사랑과 희망의 속삭임은 결국 도라의 억눌렸던 말을 터지게 한다. 두 여자의 대화로 드러나게 되는 전쟁의 민낯 속에서 과연 그녀들은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전범들의 제2과녁, 왜 여성인가= 이 연극은 유고연방 해체 이후 극심한 민족 간 전쟁, 문명 충돌로 ‘침소봉대’된 보스니아 내전 당시, 짓밟힌 여성들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드러낸다. 아울러 치유과정도 보여주고, 참상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당위를 전범자들에게 포고한다.

이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마테이 비스니에치 원작 ‘전쟁터로서의 여성(원제:La femme comme champ de bataille)’이라는 연극의 줄거리이다. 전쟁은 군인들 간의 총성에 그치지 않고 인간성 특히 여성들에게 죽음과 같은 참혹한 상처를 입힌다.

이성을 흉기로 쓰는 야수 전범자들의 2차 과녁은 어이없게도 여성을 향한다.

이 연극은 전쟁의 실체는 물론, 최근 우리 사회에도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른 위안부, 여성, 인권, 국제관계, 난민 등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고 되짚게 한다. 원작 배경과 지리적인 거리는 있어도 ‘전쟁터로서의 여성’은 나치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과거 일본군에 의해 짓밟힌 한국 여성들의 참상과 오버랩된다.

▶대안제시형 작품…프랑스대사관, KEB 등 적극 후원= 프랑스 일간 ‘르몽드’의 자매지 국제관계전문지로서 20개 언어, 37개 국제판으로 발행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대표 성일권 전 경향신문 기자)이 오는 18일~20일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유럽 언론들의 격찬과 극장의 기립박스를 받았던 이 연극의 국내 공연을 진행한다.

국내에서 대학을 나오고 파리에서 석사-박사를 한 뒤 다시 국내 언론 기관 여러 곳에서 정치외교-국제정치-경제-사회-정보기술-생활문화 등 다방면의 취재를 했던 성일권 대표가 이 연극의 기획을 맡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의 창간 10주년 기념행사 중 하나이다.

국내 초연이다. 사단법인 미래공유재단이 주관하고, 프랑스대사관, 프랑스 문화원, KEB하나은행이 후원했다.

관객들은 연극 100분, 토론 60분 동안 어떤 먹먹함, 어떤 분노를 느끼며, 아울러 야수와 같은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상호존중, 양성평등의 기반 위에서 인권이 살아 숨쉬는 세상을 향한 모종의 해법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대한 분노가 분노로 끝나지 않고, 희망과 지혜를 품은 연극이라는 점에 미래지향적이다.

프랑스를 주무대로 하는 앙벨리 컴페니 튀르쿠와 극단의 루실라 세바스치아니 연출가와 마리-피에르 코타르, 루실라 세바스치아니 등 배우들이 ‘꽉찬 무대’를 선사한다.

▶연극이 끝난뒤...토론 시간 모자랄듯= 프랑스 문화비평가 뱅상 드레이가 동서고금의 균형잡힌 시선으로 공연후 토론을 한국인 관객과 함께 한다. 토론 주제는 학살의 의미, 전쟁과 국수주의, 공동체파괴, 허무주의, 전쟁 와중 여성의 존재성 등인데, 동병상련을 느낄 한국 관객들의 폭넓은 관심과 문제의식에 비춰 토론 주제는 당연히 확장될 것이다.

연극의 시대적 배경은 1992∼1995년 보스니아 내전이다. 당시 유엔이 ‘안전 지역’으로 선포한 피난민 주거지인 스레브레니차를 세르비아군이 침공, 약 7500명의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2000년 3월 나치 전범을 처벌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유럽에서 처음으로 전범 재판 법정에 회부됐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장군 라디슬라프 크르스티치는 유엔이 ‘안전지대’로 정한 이슬람계 도시인 스레브레니차를 1995년 7월 세르비아군이 함락시킨 직후 지휘관에 임명돼 이슬람계를 대상으로 한 ‘인종과 문명 청소작전’을 자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2001년 8월 2일 유엔 구유고전범법정(ICTY)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 여성과 노약자를 추방한 뒤 전쟁 참여가 가능한 연령대의 보스니아 이슬람계 남자 8000여 명을 집단학살했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1995년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사건에 관련된 당시 크르스티치(53)에게 집단학살죄를 적용, 징역 46년 형을 선고했다. 유럽에서 전범에게 집단학살죄가 적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처음이며 ICTY가 집단학살죄를 적용한 것 역시 처음이었다.

▶지금 보스니아에 가면, 연극 메시지처럼…= 지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라는 도시에 가면, 가톨릭-이슬람-개신교 건물이 사이좋에 서 있고, 종교가 달라도 공생 상생하고 있다. 아침 가게 문을 열면서 모든 것이 다른 이웃들은 반갑게 아침인사를 하고 재미있었던 일을 공유한다.

햇살은 늘 그랬듯, 모스크에도 교회 첨탑에도 늘 비춘다. 최근 동유럽 여행객이 늘면서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당시 침략자들의 대규모 학살과 주민은 이간질 했던 장소와 건물은 그대로 보존돼 있다. 회교도든 크리스트교도든, 강 아래 마을이든, 강 윗 마을 사람이든, 그 건물을 보면서 ‘사람 위에 사람없다’는 평범한 진리, ‘그저 서로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 모든 신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이 연극이 주는 메시지를 이웃간 학살을 겪어본 사람들은 강물처럼 흘렀던 피로서 확인했지만, 우린 아직 ‘궤변과잉’ 세태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전쟁터로서의 여성’ 같은 작품은 진작 한국에 상륙해, 진정한 평화 공생 양성평등의 의미를 전했어야 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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