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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마라토너 ‘늘공’과 스프린터 ‘어공’
“마라톤 선수인 ‘늘공’을 100미터 스프린터로 뛰게 하면서 쌓인 피로감, 이 모든 것이 조직구성원의 사기를 약화시키는 이 시점에서 조직 내부의 문화를 개선해 나가는게 저의 가장 큰 숙제이며, 그 책임은 저의 몫입니다.”

‘어공’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0일 직원조회에서 직원들에 대한 사기진작 방안과 함께 통렬한 자기 반성문을 내놨다. ‘나를 믿고 따라달라’는 요지의 조회사를 하는 중간중간 북받혀 울먹였다고 한다. ‘늘공’은 늘 공무원,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을 말한다.

이날 직원조회는 지난 7월 전현직 고위직들이 재취업 비리로 검찰에 구속된 뒤 ‘부패조직’으로 몰린 직원들의 사기를 다독이기 위해 마련했던 자리 이후 석달여 만이다. 땅에 떨어진 사기와 더불어, 과중한 업무와 개혁 피로감에 타부처 전출을 신청하는 ‘직원 엑소더스’가 줄을 이을 정도로 최근 공정위 내부 분위기는 날개없이 추락하고 있다.

15일 국회에서 열린 공정위 국정감사에선 공정위 내우외환의 단초가 된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맹질타 당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전국민에게 생중계됐다. 특히 최근 갑질 내부 신고로 인해 일시적 직무정지 명령을 지시받은 유선주 심판관리관이 김 위원장의 결정에 무효 법적 검토를 받는 등 사실상 ‘항명’하는 모습이 연출되며 공정위의 난맥상은 정점을 찍었다.

‘대기업 저승사자’라는 닉네임으로 국민적 기대감과 지지 속에 출범한 김상조 공정위가 지금까지 일궈낸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하도급ㆍ가맹ㆍ유통ㆍ대리점 등 이른바 ‘갑을관계 4대 개혁’을 통해 공정경제의 기틀을 세우고, 대기업 지배구조와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들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등 김 위원장 합류이후 공정위는 쉼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공정위 조직에 목표를 향한 전력질주를 독려해왔을 뿐, 안으로 골병이 든다는 점은 간과했다. “몰려드는 민원과 사건 탓에 직원들이 과로사할 지경”이라며 과도한 업무량과 이로 인한 피로감을 누누히 호소했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했다. 또 공정위 출범 이후 38년간 유래를 찾기 힘든 급격한 내부개혁에도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은 힘겨워했다.

공정거래위원장은 국무위원 중 임기가 보장 되는 몇 안되는 자리다. 다른 장관들에 비해 부처를 이끌고 변화시키는 속도와 강도를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유리한 자리다. 김 위원장의 머리속에는 자신의 임기 3년간 ‘스프린터’처럼 달려 공정위 개혁과 재벌개혁, 공정경제 확립 등 공정위원장으로서의 미션을 완수하려는 지향점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봐도 공정위는 김 위원장 이후에도 ‘마라토너’와 같이 긴 호흡으로 국가경제를 이끌어야 할 조직이다. 아직 김 위원장의 임기는 반환점도 지나지 않았다. 공정위가 지금같이 ‘스프린터’처럼 달리기만 하다가는 언제라도 지쳐 쓰러질 수 있다. 김 위원장에게 마라토너의 체력과 속도를 조절하는 ‘페이스 메이커’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igiza7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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