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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화론으로 설명하는…특별하고 경이로운 존재 ‘인간’
“우리의 뿌리가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의 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녹아있는 독립성을 침해하거나 인간의 지식과 업적이 진짜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는다.”‘(인간의 본능’에서)
가톨릭 신자이자 과학자인 밀러 교수
진화·창조론 대립에 새로운 해석 제시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인간의 불안 공감
수준높은 의식·자유의지 갖춘 생명체로
변화·적응 경로 찾아낸 결과가 바로 ‘인간’


‘원숭이가 우리의 조상’ ‘인간은 사실상 유전자의 영속을 위한 생존기계’

진화론을 가장 직설적으로 설명해주는 이 말들은 많은 이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게 사실이다.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보니 거대하고 복잡한 우주가 어떤 지적인 존재에 의해 창조됐다는 지적설계론이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가톨릭신자이면서 지적 설계론을 포함한 창조이론에 반대하는 것으로 유명한 케네스 밀러 브라운대교수가 진화론과 창조론의 화해하기 힘든 관계에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미국 학생들이 사용하는 생물학 교과서의 저자이기도 한 밀러 교수는 ‘인간의 본능’(더난출판)에서 왜 어떤 사람들은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탐구한다. 지은이가 찾아낸 진화론에 대한 사람들의 불편함의 정체는 다름아닌 불안이다. 인간이 하등동물과 같은 기원을 공유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인간이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불안감을 준다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하등 다를 것이 없으며, 우리의 사회제도는 그저 자연선택이 만들어낸 인위적 구조이고, 개인의 생각과 행동은 환경으로부터 입력된 자동화된 반응이란 설명은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밀러 교수는 인간 자체는 물론 인간의 정신 기능이나 의식, 자유의지를 진화의 산물로 이해하면서도 “호모 사피엔스에는 다른 존재들과 진정 차별되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단호하게 믿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진화의 명백한 증거들을 제시하며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특별한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됐는지 살펴나간다.

밀러 교수는 먼저 진화가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증거와 연구결과들을 통해 설명해나간다. 조지아공화국 드마니시 마을에서 발굴된 180만년 전 서로 다른 형태적 변이를 보이는 초기 인류의 뼈와 화석들, 또 인간의 2번 염색체가 침팬지의 12,13번 염색체가 융합해 만들어졌다는 발견을 통해 진화가 신기루나 속임수가 아니라 실제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밀러 교수는 특히 진화심리학이 모든 생물의 심리나 행동을 결정된 프로그램으로 보는 시각을 경계하며 점점 더 왜곡되고 과장된 연구가 등장하게 된 사례들과 한계를 지적한다.

가령, 진화가 유전적 선호도와 함께 전달되는 보편적인 미의 기준을 만들었다는 주장의 경우, 문화적으로 고립된 페루 남동쪽 마치겐카족을 대상으로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의 몸매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미국과 서구영향권을 받은 남성들이 선호하는 여성상과 큰 차이가 난다. 지은이는 이와 관련, 인간의 본능 등 모든 것을 진화로 설명하려는 것은 인간성과 생각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철학적 질문을 뒤집어 버린다고 지적한다.

진화는 광범위한 본능적 행동들을 만들어냈지만 그렇다고 모든 취향과 윤리를 적응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진화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인간의 의식과 자유의지이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의식을 신경전달물질과 세포의 작용으로, 뇌 진화의 부산물로 설명하지만 밀러 교수는 여기서 좀 다른 해석을 가한다. 즉 자유의지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아주 막강한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상 역시 진화의 산물로, 인간이 도덕을 만들어내고 인간사회집단을 응집시키면서 번영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말한다. “다윈은 자유의지의 적이 아니며, 우리가 정말로 자유로운 존재라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이 진화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밀러 교수의 진화론은 진화의 예외적인 속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밝혀진 우리의 유전체가 알려주듯 어느 정도 무작위적인 우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행성 위의 생명체는 처음엔 그저 화학 반응하는 물질로 시작했지만 살아있는 세포를 낳고 다세포 생명체로, 다시 끝없이 변화, 적응하며 모든 생명체들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수준 높은 의식, 인식, 창조성, 지능을 갖춘 생명체로 이어지는 경로를 찾아냈으며, 그 진화의 결과인 생명체가 바로 우리다.

밀러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밀고 간다. 인간이 우주의 작은 체화라면, 인간이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곧 우주의 의식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은 광활한 우주에서 아마도 최초로 진정한 의식을 싹 틔운 존재이며, 생명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 등장한 첫 생명체”라는 점에서 자부심과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진화가 인류에게 플랫폼을 만들어 주긴 했지만 실제 창의성을 발휘해 다양한 가능성을 펼친 건 인류 자신이었음을 그는 강조한다. 또한 진화는 단선적인 진보 과정도 아니고 인류가 진화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밀러 교수는 “아담의 여정을 구체적인 부분까지 이해하는 것은 우리를 폄하하기는 커녕 우리 각자를 정말로 귀한 무언가를 담고 있는 고귀한 존재로 격상해준다. 바로 생명 그 자체의 유전적, 생물학적, 문화적 유산이다”며, “진화론은 아담의 죽음이 아니라 아담의 승리”라고 아담 신화의 끝을 맺는다. 진화론이 불편한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결론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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