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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청도 백령도 세계적 신비를 빚은 바람 바람 바람
대청도 농여-미아해변 거대 풀등群. 두개 바다의 상봉
새벽시간 대청 농여바다로 한 여행자가 걸어들어가고 있다. 바다를 건너면 백사장이 나오고 또 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한다.

“바람을 봤냐고? 우리는 바람을 보았다”
평화 바람 불면서 뒤늦게 국가지질공원화
풀등의 연속, 서풍받이, 두무진 세계적 절경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누가 바람을 보았나’(Who has seen the wind?)라는 질문에 19세기 영국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는 ‘너도 나도 본 적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가을 대청, 백령과 상봉한 본토의 벗들은 바람을 보았다.

바람은 백사장-바다 너머 다시 백사장-바다를 꾸미더니, 긴긴 서쪽 언덕을 깎아지른 예각의 절벽 병풍으로 만들었다. 유럽발 인천행 비행기 까지 밀어서 빨리 가게 만드는 매서운 서풍을 대청과 백령이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음을 목도한 본토의 벗들은 연민과 감동으로 환호했다.

대청의 북서쪽 농여해안으로 가자. 백사장에서 바다를 건너면 또 백사장이 나오고, 다시 바다를 헤쳐나가 백사장을 만나는 대청 풀등의 파노라마는 신비롭다.

▶바다위를 걷다= 대청도를 세계 최고의 섬으로 여긴다는 류재형 작가(64ㆍ가톨릭대 겸임교수)가 이른 아침 농여 바다로 들어가더니 다시 저멀리 바다 사이 육지에 우뚝 선다. 다시 새 바다로 들어간 류 작가는 갑자기 바다위를 걷는다. 서둘러 쫓아가보니 물때가 시작돼 두 개의 바다가 상봉하는 순간 모래 위에 옅게깔린 바닷물 위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세찬 바람으로 근해까지 모래가 밀려와 수중 모래절벽을 만드는 사이, 평균 해수면 보다 약간 높거나 낮은 드넓은 모래 평지가 서풍의 압박에 울퉁불퉁, 주글주글해진 것이다. 밀물때 바다와 바다가 만나는 모습은 이산가족 상봉 만큼이나 감동적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날~’ 그곳으로 가는 이유이다.

대청도 농여-미아해변을 가르는 나이테바위는 ‘연흔’이라는 지질현상으로 형성됐다.

농여와 미아 해변을 구분짓는 나이테 바위는 이같은 파노라마를 수억년 지켜봤음을 시위하며 우뚝 서 있다. 매혹적인 ‘S라인’ 세로줄 수십개를 그리며, 마치 행성을 지배했던 거대한 바오밥 고목의 한 부분같기도 한 나이테 바위는 파도, 유수,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줄무늬가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퇴적구조, 즉 ‘연흔’ 현상으로 만들어졌다.

한반도로 불어오는 서풍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대청도 서풍받이 절벽 병풍

우리는 이제 제대로 바람 흡입하는 서풍바위로 간다. 대청도 남서쪽 광난두 정자각에서 2.6㎞의 서풍받이 병풍 꼭대기 트레킹이 시작된다. 고생하는 해병대의 옷수선과 빨래를 해주고 먹을 것도 챙겨줬던 해병대 할머니(1924~1981) 묘소를 지나면, 중국에서 서해로 불어오는 강풍을 온몸으로 막아주는 해안절벽군 서풍받이가 시작된다. 강인한 소사나무 군락이 트레킹족을 보호한다.

▶바람막이 서풍받이의 감동= 산이 바람을 10억년 맞았으니, 절벽꼭대기는 예각으로 날카롭다. 생살을 도려내며 바람을 막느라 벗겨진 100여m 높이의 규암 속살은 원생대~신생대 대청도 지질역사를 말해준다. 정교하게 석축을 올린 신전(神殿) 같기도 하다.

하늘전망대 기슭에 서면, 사람형상이 바위가 서풍받이, 광난두정자, 모래울해변을 내려다 본다. 절벽 사이사이로 바람을 견디지 못한 지대는 모래울 처럼 백사장이 되고, 하단을 지탱했지만 상단은 바람에 패인곳은 욕지도의 펠리칸 바위처럼 수면 근처가 새부리 처럼 뾰족하다. 과연 이곳엔 매바위가 있다. 삼각형의 조각바위도 생겼다. 서풍받이의 랜드마크이다. 햇빛을 받으면 광채가 나는 100m짜리 반사경이다.

‘경첩’을 뜻하는 대청도 사투리 ‘지두리’ 처럼 두 곶이 팔 벌린 채 호위하는 지두리 해변도 바람에게 위세를 양보하면서 생긴 곳으로, 폭 300m의 광활한 백사장과 얕은 수심이 어린아이들 놀기에 좋다.

하늘전망대에 오르면 세상을 가진듯 하다. 척후병 처럼 서풍받이 앞을 지키는 갑죽도는 입을 벌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배영선수의 얼굴 모양이다. 어민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하던 바위섬이다.

대청도 옥죽동 해변 사구에 낙타가 있다.

옥죽동은 서쪽에서 북쪽으로 꺾어지는 지점에 있는 해변인데, 이곳 역시 바람이 강해 모래가 산으로 올라왔다. 거대한 사막(사구)엔 낙타가 있다. 옹진군 공무원들이 세운 조형물인데, 실물 같다. 이곳은 밤별 관측소로도 유명하다.

왕자시절 이곳으로 귀양 온 원나라 순제(기황후의 남편)의 흔적은 삼각산, 모래울 기린소나무, 옥자포(玉子浦), 대청초등학교 북쪽 고궁 3칸 거택기와 유지, 판서동, 국사봉 등에 남아있다. 삼각산은 명품 트레킹길로 단장했다.

소청도 분바위는 지구생성 초기의 흔적이다.

▶분바위 때문에 소청도가 형(兄)일수도= 동서 9㎞, 남북 2㎞의 ‘동생섬’ 소청도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분바위의 신비가 기다린다. 대리석 기암괴석 무리가 해안가에 포진한 가운데, 지구 생성 초기에 출현한 남조류가 변성하고 화석화한 흰색 스트로마톨라이트 암석군이 세계 지질학자들의 환성을 자아낸다. 지구생성 초기의 작품이므로 어쩌면 이 흰색 분바위군(천연기념물 508호)때문에 소청도가 대청도 보다 형일지도 모른다. 푸른 바다와의 하모니로 절경의 극치를 이룬다. 스트로마톨라이트에 경탄한 일제 동양포경주식회사 사주 일당이 바위를 잘라 일본으로 빼돌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소청도의 일제 만행 흔적은 또 있다. 답동선착장 인근 예동은 분바위 가기 전에 있다. 이곳은 일본군이 해방 무렵 방치하고 달아난 기뢰가 광복된 지 두 달만에 폭발해 59명이 숨진 비극의 현장이다. 그래서 예동엔 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졌다. 오는 12월1일 위령제가 열린다.

대청-소청은 홍어, 까나리, 멸치, 해삼, 전복, 피조개, 조기, 우럭, 민어, 상어, 미역 등 수산물의 보고(寶庫)이다. 남도의 홍어잡이가 시원찮아 대청도 것을 배달해주는 과정에서 홍어가 일부 부패했는데, 이게 새로운 풍미를 내는 것을 경험한 남도 일대에 ‘삭힌 홍어’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대청면에서는 홍어를 삭히지 않고 먹는다.

세계적인 해상절경 백령도 두무진에서 “야호”를 외치는 여행자
휘몰아치는 바람에 몸을 틀어지탱하고 있는 백령도 용트림 바위

▶바다위 앙코르와트 백령= 탐욕스런 지방관리가 갈라놓은 연인이 백학의 도움으로 재회했다는 백학도는 백령도(白翎島)의 옛이름이다. 백령도 두무진은 약 10억년 전에 퇴적한 모래가 사암이 됐다가 열과 압력에 의해 변성암인 규암으로 변한 곳인데, 대청의 서풍받이 처럼 누군가 정교하게 쌓아놓은 듯 하다. 사암과 규암이 겹겹이 쌓인 거대한 돌탑은 앙코르와트 같고, 해안 절벽 파노라마는 금강산 만물상을 닮았다.

기암괴석와 해양생태는 모두 천연기념물이다. 소용돌이 치는 바람에 몸이 나사처럼 꼬인 용트림바위(507호), 활주로로 쓰였던 길이 2㎞, 폭 200m의 백사장 사곶해변(391호), 지하 마그마가 땅 위로 올라와 굳어진 진촌 현무암(393호), 콩알만한 돌로 이뤄져 파도가 칠때마가 가슴저린 소리를 내는 콩돌해변(392호)는 모두 국가-유네스코 지질공원 후보들이다.

백령도의 명물, 물반 양념반 반반냉면
백령도 들녘에 가을 꽃이 화사하게 피었고, 여인들이 인생 셀카질에 여념이 없다.

콩돌해변의 자갈찜질은 피부염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입소문이 났는데, 천연기념물이라 콩돌 한톨도 가져가면 안된다. 일제는 이것도 대량으로 퍼갔다. 인당수를 내려다 보는 심청각, 연봉바위, 뺑덕 어멈이 살았다는 장촌은 사실에 근거한 설화 심청의 흔적이다. 두무진의 잠수함바위는 어느새 ‘심청이 타고 귀환한 잠수함 바위’로 바뀌어 있었다. 가을 꽃으로 물결치는 백령도 들녘을 감상한뒤 물반 양념반 백령도 명물 반반냉면으로 허기를 채운다.

평화의 바람이 목도한 백령-대청 관광객이 최근 30~40% 늘었다. 3개 섬 간 바다위 시내버스 역할을 할 차도선 운항도 머지않아 시작된다. 희망이 움트는 백령-대청 국가지질공원 지정은 진작에 이뤄졌어야 했다. 평화는 백령-대청-소청을 고독에서 해방시켰다. “고마워~ 소청-대청-백령! 모진 바람 막아줘서. 또 갈게!”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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