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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최석호 서울신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 아름다운 사람 우현 고유섭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1944)은 1905년 인천 용동 권번 계단 아래 용동큰우물 옆집에서 태어났다. 1925년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으로 진학해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1930년 졸업한다. 1933년 우현은 초대 개성박물관장으로 부임한다. 개성박물관장으로 재직하던 1944년 간경화로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한국미(韓國美)를 탐구하고 있었지만 한국미술사를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가 떠난 뒤 학계에서는 우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44년부터 1960년대까지는 주로 우현 고유섭이 해 놓은 연구를 계승하는 작업을 한다. 우현의 어깨 위에 올라서지 않고서는 민족문화건설과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할 수 없었다. 우현은 그렇게 큰 산이다. 제2기에 해당하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까지 우현에 대한 평가는 비판적으로 흘러간다. 일제 식민사관에 영향을 받으면서 한국미술의 미학적 특질을 규정한 몰역사성을 비판한 것이다. 일정 부분 공감한다. 제3기에 해당하는 1980년대 중반 이후로 우현 고유섭에 대한 연구는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선다. 우현 고유섭을 한국미학의 정초자(定礎者)로 재평가한다. 정당한 평가다.

다른 한편 우현은 제자 세 명을 길러낸다. 동경제국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황수영, 메이지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진홍섭, 개성 송도고보 학생 최순우 등이 바로 그들이다. 황수영 교수는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대왕암 조사를 마치고 문무대왕릉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황수영은 우현의 육필 원고를 책으로 발간한다. 인천박물관장 진홍섭은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인천에 산재한 유적을 두루 연구하고 쓴 《인천의 고적》을 인천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남긴다. 대한민국 최초 지역문화유적총람이라 할만하다.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순우는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117번지 이용희 씨 집 마당에서 500여 점에 달하는 청자기와 조각을 찾아내고, 9월에는 가마터도 발굴한다. 그 터에서 고려청자를 복원하고, 청자박물관을 세우고, 청자기와로 이은 양이정을 복원했다.

한국 대법원이 지난 10월 30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고 최종적으로 확정 판결을 내렸다. 11월 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회에서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 운운하면서 합법이라고 강변했다. 11월 5일 일본 변호사와 학자 등 100명은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문제의 본질은 인권 문제”라는 취지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날 교도통신이 발표한 유권자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47.3%로 지난 달 조사결과와 비슷했다. 한국 대법원이 내린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해서 연일 강도 높게 규탄했음에도 지지율에 변화가 없었다.

주사위는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무엇이 진정한 친일매국 잔재 청산인가? 어떤 것이 일본제국주의자 후손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인가? 아름다운 사람 우현 고유섭은 삶으로 말한다.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제대로 해 내자. 다시 어둠을 밝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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