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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포에 갈비집이 많은 이유…‘경강’이 돌아왔다
경강(=서울 한강)변 장터풍경
대동법 시행 이후 인구의 서울 집중 본격화
광나루, 뚝섬, 용산 세력 다툼도,
서강의 부두노동자 마포에서 끼니 때워
한 몫 번 상인들도 마포 갈비에서 한톡 쏘고
9일부터 ‘경강,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 展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수많은 황포돛배가 떠다니던 경강은 조선시대 한양을 흘렀던,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의 강줄기를 말한다. 우리의 서울 한강, 또 하나의 이름이다.

경강은 도성 안의 시장에 미곡, 목재, 어물, 소금을 공급하는 도매장터였고, 전국의 상품가격을 조절하는 물가 바로미터였다. 경강은 전국의 모든 물화가 집하(集荷)되는 전국적 해운의 중심지였다.

조선후기 대동법의 시행으로 조세곡의 운반이 늘어나고 부역노동의 물납세화가 가능해지자 임금노동을 통해 부역을 대신하기 위해 올라오는 지방민들로 한양의 인구가 증가했다. 경강변은 서울 메트로폴리스의 교두보였다.

상업, 선운업, 조선업, 장빙업(藏氷業), 빙어선(氷魚船)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경강상인들 외에도 수많이 계층이 공생했다.

과거 경강에 떠다니던 황포돛배

사기와 협잡을 통해 한탕을 노리는 각종 무뢰배, 배로 운반된 화물을 창고까지 운반하여 먹고사는 지게꾼, 뱃사람들을 상대로 술과 유흥을 판매하는 색주가, 뱃사람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무당 등 다양한 계층들이 살아갔다.

광진, 뚝섬, 서빙고, 한강진, 용산, 서강, 마포 등은 현재와 지명은 지금과 같다. 경강의 이름만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포구와 나루 별로 특화된 업종이 번성한 가운데, 영업권을 둘러싼 나루 간 경쟁과 갈등도 있었다.

광나루(광진)은 한강의 상류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입구였고, 뚝섬은 강원도 정선의목재가 뗏목으로 묶여 내려와 산같이 쌓여있는 곳이었다.

한강에서 얼음을 캐 동빙고, 서빙고까지 운반하는 장빙업이 성행하였고, 점차 얼음 수요가 늘어 사빙고가 생기자 망원 합정 지역에서는 민간장빙업도 늘어났다. 생물의 저장성도 높아지고 빙어선도 발달하면서 어물이 생선의 형태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용산과 서강에는 부두노동자들이 많았다. 조운선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조운선의 세곡을 창고까지 옮기는 운부계, 마계 등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역운반업의 하루 품삯은 2전 정도였다. 이들은 마포에서 끼니를 때웠다.

마포는 최초의 객주가 있었던 곳으로 어물, 쌀, 소금 등이 유통되는 물류와 상업의 최대 중심지였다. 인부들이 끼니를 때우고 한 몫 번 상인들이 한턱 쏘는 곳이어서 고깃집이 많았다. 마포엔 요즘도 갈비집이 참 많다.

한양의 근교인 경강은 도성과 가까웠고 탁 트인 풍광이 절경을 이루었기 때문에 별서(별장), 정자 등이 많았다. 또한 지류와 강이 만나면서 생기는 삼각주 형태의 지형이 이루는 경치도 아름다웠다.

우리 한강의 옛모습, 수백년전 경강이 다시 국민앞에 나타났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오는 9일 부터 2019년 1월 27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경강,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 전시를 연다.

전시실 가운데에 천장까지 돛을 펼친 9m 길이 황포돛배가 국민을 반긴다. 당시 경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수묵화와 고문서도 전시된다. 장빙등록, 정조병오소회등록, 금릉집, 존재집, 우포도청등록 등의 고문헌들과 상인들의 문서와 증표였던 임치표, 출차표, 선도록, 수표, 마포의 새우젓독 등 그동안 잘 소개되지 않았던 유물들도 많이 소개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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