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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손병석 국토교통부 제1차관] 작은 도시 ‘영주’의 삶을 바꾼 ‘좋은 공공건축’
멋진 옷을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낀 할머니들이 문화센터 수업을 들은 후 1층 카페에 앉아 친구들과 유쾌한 수다를 즐긴다. 창밖으로는 바닥분수 사이로 아이들이 뛰노는 광장이 펼쳐진다.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햇살이 쏟아지는 잔디마당에 나와 바둑을 두거나 악기를 연주한다. 바로 옆 가로수가 늘어선 공원에선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긴다.

유럽의 부유한 도시 풍경이 아니다. 경상북도 내륙에 자리한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 영주시의 풍경이다. 우리나라 지방 중소도시라면 거의 모두가 겪는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쇠락하고 을씨년스러운 모습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쇠퇴해가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영주시가 주목한 것은 바로 공공건축이다. 노인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을 혐오시설이라 치부하고 시내 외곽에 만드는 대신, 공원 조성이 계획되어 있던 시내 한복판을 선택했다.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어울릴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 설계 공모를 실시하였고, 우수한 설계자를 뽑았다. 시설 운영 일부는 주민들에게 맡겨졌다.

덕분에 주민들은 어느 도시 부럽지 않은 디자인과 주민 중심의 기능을 가진 공공시설에 자부심을 느끼고 지역에 대한 애착심도 높아졌다. 이 정도면 세금 낸 보람이 있다는 말도 들려왔다. 좋은 공공건축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를 직접 느끼고 바라보며 높아진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지역 공무원들과 건축가들도 변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보건소와 읍사무소, 도서관, 경로당 등이 영주시 곳곳에 보석같이 박히면서 영주시와 시민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지난 2009년 전국 최초로 영주시가 지역총괄계획가(총괄건축가)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지역총괄계획가는 도시-건축 통합 마스터플랜을 수립하여 부서별로 따로따로 발주와 관리가 이루어지던 공공건축물을 체계적으로 통합 관리했다. 지자체장 교체와 상관없이 제도가 꾸준히 지속되면서 지난 7년간 526억 원의 국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건립된 공공건축물들은 각종 건축상을 휩쓸었다. 영주의 성공이 알려지면서 다른 지자체 공무원들을 비롯해 매년 1,500명 이상이 공공건축 투어를 한다.

영주의 성공은 역으로 우리 주변의 고만고만한 공공건축물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좋은 공공건축물이란 단순히 외관이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 일상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함을 잘 알려준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접근하고 사용하기 쉬워 주민 간 소통이 잘 이루어지며 동네의 부족한 기능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좋은 공공건축물은 동네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정부도 지역밀착형 생활SOC로 불릴 수 있는 동네 공공건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난 8월 투자확대를 발표했다. 하지만 동시에 동네 공공건축이 국민들의 삶의 질로 연결되려면 양적 공급 확대 못지않게 질적 혁신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전국에 좋은 공공건축물이 지어질 수 있도록 영주시가 도입했던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 제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자 한다. 소규모 공공건축물 사업의 초기부터 민간전문가가 참여하여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민간전문가는 주변 환경과 주민의 삶을 고려하여 도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공공건축물에 담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소규모 공공건축물이 주민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능과 디자인을 갖도록 할 계획이다.

화려한 청사나 고층 빌딩이 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소규모 공공건축물에서 이루어짐을 기억해야 한다. 소규모 공공건축물을 좋은 건축물로 짓는 것은 결국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과 같다. 앞으로 좋은 공공건축이 더욱 활성화돼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지고 온 국민이 행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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