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속의 흰개미’ 공연장면 [제공=세종문화회관] |
극은 흰개미 떼의 서식지가 된 오래된 한 고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고택의 주인은 큰 교회의 젊은 목사 공석필이다. 그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고택과 큰 교회는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의 아버지에게 대대로 내려온 것이다. 흰개미 출몰 신고로 나선 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에밀리아, 노윤재, 서재현)의 조사와 함께 공석필은 고택의 비밀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러던 중 그의 죽은 아버지(공태식)에게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임지한이 찾아오면서 과거 고택의 비밀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극에서 흰개미의 존재는 흙 속에서 들리는 어마어마한 흰개미 떼의 소리로 전달된다. 목재가 주식이라는 흰개미 떼로 인해 붕괴의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 고택, 흰개미의 상징을 통해 오랜 시간 감춰왔던 그 집안 아버지들의 악행과 비밀들이 고택 밖으로 터져 나오기 직전임을 암시한다.
흰개미 떼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은 극에서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선 학계에서 흰개미들이 만든다고 추정하는 ‘페어리 서클(Fairy circle)’. 이 동그란 패턴이 고택의 마당에서 발견된다. 흰개미 존재의 근거이자 패턴화 되어 나타나는 인간의 특정한 믿음, 그리고 굴레처럼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고택과 가업을 지키기 위해 과거 수많은 아버지들이 행했던 악행들은 곧 우리사회의 비밀스럽고 부패한 어두운 단면을 투영한다. 그리고 그 악행은 페어리 서클처럼 돌고 돌아 결국 자신들을 향하게 되고 대대로 지켜온 가업은 위험에 처한다. 어두운 고택의 풍경 속에 흰개미의 존재를 암시하는 현상들은 그 속의 다양한 의미들을 드러내면서 극은 지속적으로 불안정함을 조성했다.
공석필은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의 기억과 억압 속에서 괴로워하고, 아버지의 모습을 거부하면서도 이미 세습되어진 듯 스스로도 그의 아버지들과 같아지는 자신을 보게 된다. 패턴화 된 또 다른 페어리 서클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동안 침묵으로 방관해 온 그의 어머니(윤현숙)는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회상한다. “사람들이 이 집을 아낀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집은 적이 많아, 그래서 담을 높이 지은거야,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말을 아끼고 또 아껴라 이 집은 비밀이 많으니까” 믿음에서 시작된 모든 것이 모두 허위이며 거짓임을 알게 되지만 침묵으로 봉쇄해왔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높은 담에 가려져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 같던 고택의 비밀은 흰개미떼에 의해 모두 드러난다. 소름끼치는 흰개미 떼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진실이 드러나며 고택은 붕괴된다. “우리는 뭘 믿고 살아온 걸까, 뭘 믿고 사는 걸까, 우리는 우리가 뭐라고 믿는 걸까.”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종종 어떤 믿음에서 비롯된다. ‘사막 속의 흰개미’에서는 나를 지탱해 왔던 것이 결국 나를 조금씩 몰락시키고 있었다는 역설을 통해 깨달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