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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국민신뢰’ 관심 없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53명 중 24명(45.3%)’.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증시에 상장된 8개 공공기관에 53명의 임원이 임명됐다. 그런데 이 중 24명은 이른바 이번 정권의 ‘캠코더’(캠프ㆍ코드ㆍ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주장이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관련 산업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한데도 불구, 정부 주요 인사와의 ‘끈’이나 지역 연고를 이유로 인사가 단행된 것에 대한 질타였다.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화살을 피해 갈 수 없는 기관이 있다. 바로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한국전력공사(6.4%, 이하 3분기 기준 국민연금 지분율), 한국가스공사(8.3%), 한국전력기술(7.3%) 등 논란이 되고 있는 8개 상장 공공기관 중 6곳에 대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사 선임이 결정되는 주주총회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텐데, 국민연금이 보기에는 이들 인사를 이사로 선임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 같은 의문을 품었던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최근 국민연금에 ‘낙하산 인사 찬성’ 이유를 물었는데, 답변이 참 간단하다. 기업이 이사 선임과 관련해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린 내용(주로 해당 인사의 현재 혹은 이전 경력)을 그대로 ‘복사하기+붙여넣기’해 보낸 것이다. ‘왜 이런 경력의 인사를 뽑았나’ 물으니 ‘이런 경력이라서’라고 답한 셈이다.

국민연금이 과연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슈퍼 주총시즌’을 무사히 치러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이유는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증명하라는 요구에 무관심해 보여서만은 아니다.

지난 7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지침)를 본격 도입했기에 국민연금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국민연금의 주식을 위탁받아 운용하고 있는 민간자산운용사들이 의결권도 함께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매번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국민연금의 막대한 영향력을 줄이는 동시에, ‘정부가 지배하는 국민연금이 기업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을 상쇄하기 위한 차원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은 아직 법제처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후 차관회의,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 등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 3월 슈퍼 주총시즌까지는 국민연금이 모든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독립성은 차치하더라도 ‘기금 자산의 증식’이라는 스튜어드십코드의 최우선 원칙을 철저하게 이행할 만큼 전문성을 갖췄는가. 내외부 평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복지부는 국민연금의 본격적인 코드 도입을 앞두고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따로 마련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곤란한 사안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가지는 핵심 중 핵심이다. 다른 민간 운용사 의결권 행사에 영향을 미칠 ‘의결 방향 사전공개’의 범위도 전문위가 결정한다.

그러나 한 기금운용위 위원이 한탄한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국민연금 재정과 관련한 각종 위원회가 ‘대표성’을 중시해 구성되다 보니, 전문적 식견보다는 각 진영의 이념적 편향을 가장 잘 관철할 사람으로 위원회가 구성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수탁자전문위는 사용자ㆍ근로자ㆍ지역가입자ㆍ연구기관ㆍ정부 등 각 영역을 대표하는 기금운용위 위원이 추천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를 위촉해 구성된다.

요즘 국민연금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국민연금은 이같은 비난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까. 외압이 있었을지언정 판단은 독립적이고 공정했다며 세간의 비난을 일축할 수 있을까. 정부로부터의 독립성, 그리고 잡음이 껴들 틈 없는 전문성을 하루빨리 증명해야 할 때다.

hum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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