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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노(NO) 대통령 비서실장’에 거는 기대
데뷔는 인상적이었다. 모양새가 그럴듯 했다. 전임은 웃으며 물러나면서 후임 비서실장을 소개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을 명심하겠다고 했다. 남에겐 부드럽게 하되, 자신에겐 엄격하게 대하겠다는 말이다.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 노영민 얘기다. 지난 8일 청와대 참모진 인선발표 브리핑 후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그는 겸손도 강조했다. “실장이 됐든, 수석이 됐든, 비서일 뿐이며 그것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첫 일성은 잘난 척 하지 않으며, 권력의 단맛에 취해 본분을 잊는 행동을 스스로 경계하겠다는 것이다. 9일에는 청와대 직원들에게 서신을 보내 “절제와 규율의 청와대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임 비서실장이 ‘춘풍추상’을 강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최근 청와대 행정관의 육군참모총장 만남 등과 관련해 청와대에 꽂힌 곱잖은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청와대가 대통령을 등에 없고 갑질권력을 휘두른다는 세간의 불신을 앞으론 용납치 않겠다는, 일종의 청와대 비서진들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초심(初心)은 나무랄데 없어 보인다. 청와대 참모진 수장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민ㆍ정치권과의 소통에 가교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럴듯한 말이 그럴듯한 행동과 늘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게 그렇다. 최고 권력과 가까이 하다보면 권력의 맛에 길들여지고, ‘오만’이라는 괴물에 온몸을 점령당할 수 있는 자리다.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의 수난사는 그걸 대변한다. 물론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 대부분 첫마디는 ‘본분을 잊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한결같이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겠다고 했다. 대통령 ‘그림자’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어느날 공중분해되고 ‘부통령’, ‘2인자’, ‘대통령의 복심’ 등의 딱지가 따라붙게된 비서실장을 숱하게 목격해온 것이 사실이다.

노 신임 비서실장 얘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이런 모든 것들이 기우였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역대 청와대는 위기국면에서 ‘실세 비서실장’을 택해왔다. 노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지지율 하락과 경제난 타개를 위해 쇄신의 ‘2기 청와대’가 필요했고, 그 수장에 최측근을 앉혔다는 게 중론이다. 문 대통령은 실제 “정책에 밝으니 역할 많이 해달라”고 신임 비서실장에 주문했다고 한다. 대통령 의중을 잘아는 최측근은 국정보좌역엔 적임자지만, ‘실세’라는 이름이 붙여지며 초심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가에서는 노 비서실장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노 비서실장과 잘 아는 정치권 인사는 “노 비서실장이 강성이미지인 것은 맞지만, 현재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유연하게 대처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의 예상이 맞길 바란다. 한가지 더 신임 비서실장에 바랄 게 있다면 ‘아니오’라 말할 수 있는 ‘노(No) 비서실장’이 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포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럼스펠드는 “비서실장은 대통령에게 날카롭게 짖어댈 수 있어야 한다. 그 용기가 없다면 그 자리를 받지도, 머물지도 말라”고 했다. 겸손한, 그러나 노(No) 비서실장 역할을 기대한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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