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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개의 공간, 네 개의 이야기… 연극 ‘더 헬멧’
한국 민주화운동과 시리아 내전 배경 번갈아 공연…
각 무대서 ‘빅룸’ ‘스몰룸’ 나누어 인간성에 대한 질문 이어가…
독특한 ‘형식’ 눈길


이 이야기는 한바탕 꿈일지도 모른다. 폭격에 무너져 내린 건물에 갇혀 자신을 구하러 엄마와 아빠, 그리고 늘 들었던 영웅과 같은 구조대원인 화이트헬멧이 올거라고 믿었지만 끝내 시신으로 발견된 9살 아이가 생사의 경계에서 꾼 환상과도 같은 이야기.

이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지도 모른다. 전쟁에 아내와 아이를 잃고, 그래서 무한한 반감으로 온 몸에 폭탄을 두르고 기꺼이 자살폭탄테러를 하게 되는 이야기. 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친정부와 반군으로 나뉘어 동족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이야기.

연극 ‘더 헬멧’의 ‘룸 알레포’는 시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수년에 걸친 내전으로 생의 모든 기반이 파괴된 그곳을 배경으로 철저하게 생에 대해 노래한다. 우리에겐 월드컵에서 만난 상대라는 접점으로 존재하는 시리아는 무대에서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다가온다. 들어오지 않는 전기가 어느날 갑자기 ‘팟’하고 들어오는 기적을 기대하고, 무너져 버린 빌딩에서 혹시라도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날까 돌덩이를 들어올리는 구조대원들, 어느날 갑자기 학교가 폭격에 사라져 버려도 친구들과 공을 차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비록, 그 조마조마한 삶이라는 게 모래톱에 얼굴을 박은 채 숨을 거둔 아이의 싸늘한 시신처럼 차디찬 현실이라고 할지라도. 그러나 연극 ‘더 헬멧’의 덕목은 인간 삶의 비극을 담담하게 드러낸다는 데 있지 않다. 흡입력 있는 스토리, 설득력 있는 배우의 연기보다 형식에서의 실험이 돋보인다. 

1980년대 한국 서울과 2010년대 시리아 알레포, 두 개의 시공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 ‘더 헬멧’이 무대에 오른다. 하루는 서울, 하루는 알레포를 배경으로 하는 무대는 각각 누군가를 찾는 이들이 모인 ‘빅 룸’과 작은 공간에 갇힌 ‘스몰 룸’으로 다시 나뉘며 총 4개의 극본이 하나의 연극안에 공연된다. 4편을 다 보아도 좋고 그중 1편만 보아도 완결된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다.

‘더 헬멧’은 사실 대본 4개로 4개의 공연으로 구성됐다. 1980년대 한국 민주화 항쟁을 배경으로 한 ‘룸 서울’과 시리아 내전을 다룬 ‘룸 알레포’ 등 2개 시공간이 하루 하루 번갈아가며 무대에 펼쳐진다. 각 무대에서는 ‘빅 룸’과 ‘스몰 룸’으로 나뉘어 이야기가 진행되며, 관객은 큰 무대가 있는 방과 작은 무대가 있는 방 중 한 곳에서만 연극을 볼 수 있다. 어떤 연극을 볼 것인가 하는 건 전적으로 관객의 선택에 달렸다.

시냇물이 커다란 바위를 만나 잠시 갈라졌다 다시 만나는 것 처럼, 이야기는 한 무대에서 시작해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 진행되다 다시 하나의 무대로 만난다. 무대를 가르는 장치는 반투명 유리창인데, 건너편 배우의 움직임과 목소리가 간간히 전해져 긴장감과 몰입도가 순식간에 상승한다. ‘룸 알레포’에선 무너져 내린 건물에서 아이를 찾는 구조대원의 절실한 움직임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룸 서울’에선 백골단을 피해 지하실로 숨어든 학생들의 마지막 보루로 활용된다.

4개 무대를 다 보아야만 ‘더 헬멧’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1개만 보아도 완결된 연극으로 감상할 수 있다. 공연들이 이어지거나 통일된 형식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연출을 맡은 김태형은 “공연을 수도 없이 보셨던 분들도 한 번도 보지 못한 형식일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4개 이야기가 모두 따로 노는 건 아니다. ‘화이트 헬멧’을 매개체로 느슨한 연결이 존재한다. 알레포에서는 사람을 구하는 구조대원이지만, 서울에서는 민주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추적하는 경찰기동대 ‘백골단’의 상징이다. 구원과 억압의 상반된 상징인 헬멧이 전체 4개 시놉시스를 하나로 묶어낸다.

2017년 대학로 초연 당시 파격적 형식으로 전석 매진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 S시어터로 옮기고 나서는 관객 몰입도가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객석과 무대가 더욱 가까워졌고, 완벽한 암전으로 극의 흡입력도 좋아졌다. 강력한 서라운드 우퍼로 객석이 살짝 흔들리며 공습의 공포도 실감나게 전해진다. 이번 공연에선 기존 이호영, 이정수, 한송희에 이어 김보정, 김슬기, 김종태가 합류했다. 2월 27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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