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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혀진 女 독립운동가, 별처럼 많죠”...'유관순 서훈등급 격상' 목소리 높이는 여성독립운동硏 심옥주 소장
“유관순 서훈등급 격상” 목소리 높이는 여성독립운동硏 심옥주 소장
나라의 독립에 힘보탰던 女 투사 찾아…구멍난 역사 메우기 동분서주

3ㆍ1운동 10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만난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은 “앞으로 100년 뒤 대한민국 후손들은 어떤 한 사람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부르듯 최소 100명 이상의 여성 독립운동가 이름을 술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흔히 역사(history)는 강자의 이야기다. 강자였던 남자들의 이야기가 곧 역사였다. 이런 관점을 뒤집듯, 잊혀진 채 묵혀뒀던 여성들의 독립운동사를 증명코자 나선 사람도 있다.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누구보다 바쁘게 뛰고 있는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이다.

그가 사람들 앞에 여성들의 독립운동 역사를 알리기 위해 걸어온 지 벌써 10년이 됐다. 심 소장은 지난 2009년부터 윤희순 의사를 시작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독립운동사를 발굴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40대의 나이에 2016년 제 15회 유관순상, 2015년 한국보훈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심 소장이 ‘윤희순 의사’ 연구로 발간한 평전은 잊혀진 한국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시작점이 됐다.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눈 붙일 틈도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심 소장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이날 심 소장은 유관순 열사의 서훈등급 격상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 참석했다. 심 소장은 전날도 3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면서도 연신 들뜬 표정이었다.

▶대상포진 견디며 울다 쓴 ‘윤희순 평전’=심 소장에게 여성 독립운동사 연구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는 지난 2009년 우연히 TV에서 한국 최초로 여성 의병 지도자였던 윤희순(1860~1935) 의사 관련 행사를 봤다. 당시 심 소장은 한의학 전문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이 50이 되면 침통을 들고 다니며 아픈 사람 고치는 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윤희순 이름 세글자를 듣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그날의 결정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날로 그는 고시원을 나와 강원도 춘천으로 향했다. 윤희순 선생의 흔적을 찾아서였다. 지금도 춘천시립도서관에는 윤희순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윤희순 선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 지도자’란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게 알려진 것이 너무 없었다.

심 소장은 윤희순 선생의 기록이 남아있는 각지의 역사전시관과 천안 독립기념관을 오가며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궤적을 좇았다. 인물이 태어난 곳은 직접 갔고, 여성 독립운동가의 시댁까지 다 찾았다. 역사학계에선 도움을 주는 곳이 거의 없었다. 거의 모든 것을 걸고 매진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박사 논문보다 윤희순 평전이 먼저 나왔다. 심 소장은 “지금 보면 부끄럽지만 그때는 대상포진이 올 정도로 힘들었다. 울면서 쓴 작품이 윤희순 평전”이라고 말했다.

그가 현재 소장으로 있는 여성독립운동연구소는 2009년 부산대학교 바로 앞에 책상 하나만 있는 12평 사무실에서 시작됐다. 책장으로 벽면을 둘러싸면 앉을 자리밖에 남지 않는 그곳에서 혼자 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심 소장은 “모두들 돈이 안되는 연구라고 했다. 연구를 해보겠다고 지원금 사업에 신청서를 넣어도 열이면 열 모두 탈락됐었다”고 회고했다.

심 소장이 발로 뛰어서 얻은 첫 결실은 2013년 6월에 출간된 ‘여성독립운동가의 보훈예우현황에 대한 연구’였다.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로 대표되는 남성 독립운동가들 위주로 쓰여졌던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에 처음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의 장이 펼쳐진 순간이었다.

심 소장은 저서에서 여성들 역시 가열차게 독립을 위해 힘썼고,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보훈예우가 형편없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국가보훈처에는 당시 남녀 구분조차 돼 있지 않을 정도로 여성 독립운동은 불모의 영역이었다.

▶불모지였던 여성 독립운동사=심 소장이 역사 연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증빙할 선행 연구 자체가 부족했던 점이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자료는 소실됐고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은 보관 상태가 불량해 알아보기 힘들었으며, 만주나 간도 일대에선 아예 살아남기 위해 자료를 없앤 정황도 보였다.

서훈을 주는 기준도 여성에겐 불리했다. 예컨대 보훈처 선정 서훈 기준에는 ‘수형 6개월 이상’이란 규정이 있다. 그러나 이는 여성의 대외 활동이 적었던 시대상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서훈 기준이라고 심 소장은 강조했다. 심 소장은 “당시 여성 활동의 시대적 제약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품격도 재심사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서훈 기준이 완화돼 수형 기록이 없더라도 지속적인 독립운동 활동을 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를 재검토하고 있다. 일기나 기초 자료 등도 해당된다”고 말했다.

심 소장은 “유관순 열사를 크게 다룬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는 올해 3ㆍ1운동 100주년이 되고나서야 겨우 나왔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독립운동사가 미디어의 조명을 받아야한다. 주목받지 못한만큼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고 말했다.

심 소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성 독립운동가가 누구냐고 묻자 제주 출신인 ‘고수선 선생과 그 벗들(최정숙·강평국)’을 꼽았다. 고수선 선생은 제주 출신 최초의 여의사였지만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형무소에서 손가락이 엉망이 될 정도로 고문을 당했다.

심 소장은 이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교육감 최정숙(1935~) 선생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파란만장한지. 근우회 동경지회장까지 했던 강평국(1900~1933) 선생은 어떠냐.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미에서 본래 이름인 년국을 평국(平國)으로 바꾸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유관순 서훈 등급, 논란 자체가 없어져야”= 한편으로 심 소장에겐 현재의 상황에 대한 아쉬움도 적지 않다. 일제로부터의 독립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심 소장은 “우리는 독립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자꾸 잊어버리지만, 100년 뒤엔 지금이 역사다. 100년 뒤 대한민국 후손들은 역사 속에서 활약한 여성들의 기록이 풍부하게 알려진 시대를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 소장은 “그땐 유관순 열사의 서훈등급을 올리냐마느냐를 두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잊혀졌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이야기가 거론됐으면 한다”며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부르듯 최소 100명의 이름이 술술술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남성들의 ‘히스토리’로 압축된 역사를 여성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돌아본 연구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선물과 같은 선조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여성독립운동가 분들 이야기를 보면 한국 어머니들의 삶이 곧 역사다”며 “여성들은 희생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독립운동 대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했다. 되찾은 나라를 물려줘야한다는 생각은 남성과 여성 구분없이 한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심 소장은 인터뷰 중 ‘애국심’이란 단어도 자주 언급했다. 그는 “애국심은 당연히 품어야 하는 마음이다. 이땅에 태어났다면 당연히 품고 있는 마음이다. 아직 발견 안됐다면 발견해보시라”고 기자에게 권유하기도 했다. 심 소장은 “해외에 나가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피부로 느낄 때 가슴이 뛰는지 안 뛰는지 보시라. 가까이 있으면 보물이 보물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일희일비해선 안돼”=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올해 유달리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심 소장은 그러나 ‘일희일비’ 해선 안된다고 했다. 그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슬프지 않았고, 3ㆍ1운동 100주년이라서 본인을 알아봐주는 시대가 온 것에 대해서도 과하게 기뻐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심 소장은 “3ㆍ1운동 99주년을 지내봤기 때문에 101주년, 102주년 그 이후까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 10년동안 여성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면서 느껴온 부침들을 생각하면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과 언론의 플래시에 일희일비 해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며 “단기간의 관심, 성과보다 101주년, 102주년으로 무뎌지는 관심 속에서도 꾸준히 밀고 나가는 뚝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919년 당시의 독립운동이 세대와 지역과 남녀를 초월했듯이 이번 100주년도 세대와 지역과 남녀를 초월해서 우리 사회가 다함께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라며 “여러가지로 분열된 지금의 사회가 3ㆍ1운동의 정신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심 소장은 이어 “가슴으로 느끼고 이야기하고, 역사의 소중함을 공유하는 장이 이번 100주년을 계기로 이뤄졌으면 한다”면서도 “그냥 여성독립운동을 연구하는 것이 삶의 일부분이 돼 버렸다. 그래서 특별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게 돼버렸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자리에 여성독립운동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나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어깨가 무겁다. 힘들면서 기쁘고 즐거우면서 어렵다”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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