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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어 50~80% 50여개 외국어 빌려온 영어…세계의 언어로 성장한 비결

영어사용자는 15억 명, 영어의 경제적 가치는 6171조원, 단일 상품으론 최고다. 인터넷상에는 1500가지의 언어가 존재하지만 인터넷의 70%는 영어로 돼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싱가포르, 서인도제도까지 방대한 지역에서 영어를 모국어 혹은 제2외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5세기 15만명이 쓰던 영어의 반경은 21세기 50배 넓어졌다.

절대적인 권좌에 올랐지만 지난 삶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9세기엔 바이킹의 공격을 받았고 11세기에는 노르만족에게 정복당하면서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라틴어, 프랑스어에 밀려 상류층과 교회에선 금기어로 홀대받았다. 이런 역경의 세월을 지나 영어는 미국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상속자’로 삼으면서 비로소 세계언어로 우뚝섰다. 게르만어의 방언에 불과했던 영어가 세계를 제패한 힘은 무엇일까.

영국 BBC방송 베테랑 피디로 영어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해온 멜빈 브래그는 그 비결로 영어의 포용력을 든다. 즉 다른 언어들을 거부감없이 흡수해 ‘영어화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어휘력을 자랑하는 영어의 50~80%가 50여개 외국어에서 빌려온 차용어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프랑스어에서만 1만 개 이상의 단어를 가져왔으며, 심지어 아랍어와 일본어도 탐욕스럽게 흡수했다. 영어가 낯설지 않고 왠지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만큼 세계어로 성장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저자는 다른 언어들을 흡수하는 영어의 능력을 ‘지치지 않는 식욕’으로 표현한다.

영어의 또 다른 힘은 단순화다. 단어에 성을 없애고 굴절어미 등을 제거하고 전치사를 사용해 단순화함으로써 언어자체의 힘도 키웠다. 하지만 결정적인 건 미국의 역할이다. 영어가 미국에 먼저 들어온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된 데는 청교도인들 덕이다. 이들은 교역이나 약탈이 아닌 정착해 살러 왔기때문이다.

저자가 제작한 BBC라디오 25부작 ‘영어의 여정’을 바탕으로 한 책은 499년 게르만족이 잉글랜드로 이동해오면서 시작된 본격적인 삶부터 8세기 말 이후 300년간 이어진 바이킹의 침략에서 알프레드 대왕이 위기에 처한 영어를 구해낸 이야기, 11세기초 이후 300년간 프랑스의 노르만족에게 정복당해 고대 영어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최대 위기 상황 등을 흥미롭게 펼쳐낸다. 역경 속에서도 영어는 민중의 언어로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갔다. 프랑스 정복기간 동안 영어는 노르만의 침략을 최대한 이용, 어휘를 더욱 풍요롭게 발전시켜 나갔다.

국가간 민족간 전쟁은 한편으론 언어 전쟁이었다. 웨일스어나 스코틀랜드어, 미국 인디언의 언어나 카리브해와 호주 원주민 언어, 인도 등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들의 언어는 치명적으로 손상을 입고 위축되거나 소멸됐다.

그렇다면 영어의 미래는 어떠할까. 학자들은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제2언어 사용자가 모국어 사용자보다 3배 이상 많다. 문법 파괴, 축약 등 젊은 세대들에 의해서도 영어는 변하고 있다.

영어의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진화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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