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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극빈층 줄었다? 늘었다? 그대로?…93% ‘오답’
사실만 활용 13개 질문 대다수 틀려
일부 학자·정치인, 대중보다 못맞혀
치우친 체계적 오답 ‘잘못된 세계관’
나쁜것에 주목 ‘부정 본능’ 없애야…
세계적 통계학자 ‘현실 직시하는 법’

“여러 침팬치의 결과를 한데 모아보면 오답은 틀린 보기 2개로 똑같이 나눠지겠지만 인간의 오답은 한쪽 방향으로 쏠리는 성향을 보인다. 내가 질문한 모든 집단은 세상을 실제보다 더 무섭고 더 폭력적이며 더 가망 없는 곳으로, 한마디로 더 극적인 곳으로 여겼다”(‘팩트풀니스’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휴가철이나 연말 시즌에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추천하는 다섯 권의 책은 고스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라 ‘출판가의 큰 손’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지난 해 6월엔 세계적인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의 역작 ‘팩트풀니스(Factfullness)’를 미국의 모든 대학졸업생들에게 공짜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해 화제가 됐다.


지성인들에게 더 큰 반향을 일으킨, 출간 6개월 만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이 책은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편향되게 바라보고 있는지 명료하게 보여준다.

로슬링은 세계의 가난과 부, 인구성장, 출생, 사망, 교육, 건강, 성별, 폭력, 에너지, 환경 같은 주제와 관련한 질문 13개를 만들어 전 세계 수천 명을 대상으로 질문지를 돌렸다.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만을 활용, 단순하게 만들었다. 세 개 보기 중 정답을 고르는 문제에서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답을 거의 맞히지 못했다.

가령,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고작 7%만이 정답을 맞췄다. 미국은 세계 평균에도 못미치는 5%만이 정답을 맞췄다. 나머지 95%는 지난 20년간 극빈층 비율이 바뀌지 않았거나 2배로 높아졌다며 실제와 반대로 생각했다. 또 예방접종은 세계의 거의 모든 아동이 받고 있지만, 고작 평균 13%만이 정답을 맞췄다. 의대생이나 대학강사, 과학자, 투자은행종사자, 다국적기업 경영인, 정치권 고위인사 등도 대다수가 오답을 내놨다. 그 중 일부는 일반대중보다 점수가 낮았다. 심지어 노벨상 수상자와 의료계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식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심각하게 세계를 오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런 오답이 ‘체계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한쪽으로만 오답이 치우쳐 있다는 얘기다. 이는 지식이 적극적으로 잘못됐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침팬치가 무작위로 정답을 고를 경우와 다르다.

저자는 체계적인 오답은 잘못된 세계관 때문이라며, 우리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을 지적한다. 우리는 전쟁, 폭력, 자연재해, 인재, 부패 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세계인구의 절대다수가 중간소득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산층이 다 같진 않지만 세상은 대체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은 우리 뇌의 작동방식에서 나오기 때문에 바꾸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수렵과 채집시절, 즉각적인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인간의 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속단하는 쪽으로 발달했다.

저자는 잘못된 세계관을 조장하는 10가지 본능을 일일이 제시하며, 이를 직시하고 사실에 충실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이 가운데 간극 본능은 일상에서 흔하다. ‘우리’와 ‘그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혹은 반대되는 두 집단 등으로 나누는 성향이다. 이는 세상을 극단적으로 보게 만드는데, 평균 대신 분산을, 극단 비교 대신 중간에 대다수가 몰려있다는 점을 의식적으로 인식하는게 필요하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부정 본능 역시 잘못된 세계관을 형성한다. 여기에는 과거를 미화하거나 비참함을 상기하지 않으려하는 잘못 기억하기와 사건의 선별적 보도, 상황이 나쁜데 더 좋아진다고 말하는 데 따른 부담 등이 작용한다. 저자는 직선본능, 공포본능, 크기본능, 일반화본능, 운명본능, 비난본능 등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뇌의 작용에 맞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사실충실성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숫자의 경우, 그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알려면 비교하거나 나누면 팩트가 선명해진다. 또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세계가 돌아가는 걸 이해해야 한다. 개인을 비난하다 보면 다른 이유에 주목하지 못해 재발방지를 놓치게 된다.

저자는 사실충실성을 키우려면 무엇보다 겸손과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호기심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다. 내 세계관과 맞지 않는 것도 끌어안고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학생이든 어른이든 지식을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슬링은  세상의 심각한 무지와의 싸움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책을 마지막 전투로 여겼다. 그는 2017년 2월7일 췌장암으로 타계하기 전까지도 병상에서 초고를 다듬었다. 책은 명확한 수치를 통해 우리가 추측하는 것보다 세상은 그렇게 나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과장과 탈진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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