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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대통령 대변인의 씁쓸한 퇴장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취임 425일 만에 떠났다. 사표를 낸 후 기자들에게 스스로를 까칠한 대변인, 감당하기 어려운 대변인이라고 평가하고 청와대를 나왔다. 직설적이고 뾰쪽한 어휘사용을 즐기고 때로는 ‘추수 뒤에 떨어진 이삭 같은 낙수 몇 가지’라는 시적인 얘기도 겻 들였기 때문에 최근 몇몇 대변인과 대비되던 그였다.

하지만 떠나는 날 ‘흑석동 상가 문제’는 아내가 저지른 일이고 본인이 알았을 땐 되돌릴 수 없는 때였다고 말했다. 은퇴 후를 걱정하여 전 재산을 쏟아 붓는 큰일인데 남편과 상의도 없이 결행했다는 것이 일반 상식을 뛰어 넘는다. 아무튼 불미하게 떠나게 되었으면 그냥 ‘메아 꿀빠(mea culpa)‘하는 것이 훨씬 개운했을 터인데 찌꺼기를 남겼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소상히 알리는 것이 자리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입’으로 불린다. 대통령 대변인은 48년 7월 ‘성북동 비둘기’를 쓴 김광섭 시인을 시작으로 40여 명이 맡아왔다(직제나 직명 개편으로 제대로 된 기록이 없단다.) 대변인을 끝내고 장관으로 정치인으로 활약을 한 인사가 즐비하다. 그래서 청와대 대변인은 영향력도 크지만 더 큰 다음 행보가 보장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뭍사람이 맡고 싶어 하는 자리이다.

백악관 대변인은 허버트 후버 대통령 이전까지는 개인비서 수준이었다. 대변인다운 대접을 받은 사람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스티븐 얼리 가 아니가 싶다. 31명 모두가 미디어로부터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같이 불미한 사건으로 접거나 정치판으로 옮기는 그런 모습은 아니다. 백악관과 미디어 나아가서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애쓴 사람들이 꾀 많다.

링컨대통령 시절 국방 및 대변인 노릇을 한 에드윈 스탠튼(1814-1869)이 그중 하나이다. 1865년4월14일 링컨대통령이 포드극장에서 총격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고 그는 ‘대통령이 오늘 밤 극장에서 총격을 당했다. 치명상을 입었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중요한 사실만을 앞에 집중 배치하여 불필요한 정보 확산을 막자는 의도였고 이런 형식은 기사작성의 근간이 역삼각형 꼴의 효시라고 인정되고 있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기사의 형식을 창안한 셈이다.

다른 한 사람은 아이젠하워 시절 대변인 제임스 해거티이다. 뉴욕타임스 출신인 그는 기자들과 첫 만남에서 ‘어떤 이익을 위해 장난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내가 모른다고 하면 모르는 것이고 노코멘트라고 하면 더 이상 얘기할 수 없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지만 난 대통령 한분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라고 대변인의 역할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효과적인 소통 방향을 제시했다.

이 두 사람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널리즘 발전에 기여하고 대 국민 소통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 부럽기만 하다. 그저 우직할 정도로 자기 직분에 충실했을 뿐이다. 잿밥에 한 눈을 팔거나 권력을 누리려다 쫓기듯 자리를 떠나는 김의겸 대변인의 모습이 안쓰럽고 창피하다.

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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