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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856년史 ‘프랑스 그 자체’…위고 “과학·예술사 한 페이지”
노트르담 대성당은 어떤 곳

“노트르담 성당은 다양성의 신기한 표본이다. 각 얼굴, 각 돌은 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과학과 예술사의 한 페이지다.” (빅토르 위고 ‘노트르담의 곱추’ 中)

15일(현지시간) 화마에 휩싸인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유럽 카톨릭의 상징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역사를 가진 성당 중 하나로, 850년이 넘는 세월동안 프랑스의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성당의 역사에는 나폴레옹 황제, 구국 영웅 잔 다르크 등 굵직한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노트르담 성당을 ‘프랑스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노트르담 성당은 루이 7세 시절인 1163년에 착공됐다. 당시 루이 7세는 파리가 국내외 정치,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힘의 상징이 되기를 원했고, 이를 상징할 수 있는 종교적 기념비로서 대규모 성당을 짓기로 결심했다. 노트르담 성당은 약 200여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345년에 완공됐다.

노트르담 성당에서는 대관식, 결혼식 등 왕실의 주요 행사가 열렸다. 잉글랜드의 왕 헨리 6세가 이 곳에서 1431년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했고,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5세와 프랑스 공주 마들렌의 결혼식도 이 성당에서 열렸다. 현대에 들어서는 샤를 드골,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장례 미사가 열리기도 했다. 이후 노트르담 성당은 1790년대 구체제, 왕정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훼손되고 방치된다. 성당의 종 대부분은 대포알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28개의 ‘유다의 왕들(The Kings of Judah)’ 동상은 ‘프랑스 왕조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목이 잘려져나갔다. 이 중 21개 동상은 1977년 파리 착굴 공사 중 발견됐다.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프랑스 제1제국 황제로 즉위하고, 성당을 다시 종교적인 용도로 돌려놓았다.

무관심 속에 세월을 보내던 성당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31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곱추’가 출간되면서다. 그때까지 노트르담 성당은 무너지고 반쯤 휘어진 상태였다.

위고는 중세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노트르담 성당이 다른 고딕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철거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성당 보존을 주장했다. 그는 “모든 형태의 불경, 타락은 중세의 존경할 만한 기념비들의 잔존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이 기념물들은 왕에 대한 기억과 민족의 전통이 모두 붙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을 이끈 잔다르크가 1909년 성당 안에서 교황 비오 10세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노트르담 성당은 1991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추가됐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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