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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본질 비켜간 한은의 회피성 해명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는 외자(外資)운용원(이하 외자원)이라는 곳이 있다.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말 그대로 한은이 보유한 외화자산을 운용하는 한은 내 특수 조직이다. 한은의 외화자산은 주로 외환보유액으로 구성이 돼 있으며 작년말 외환보유액은 원화로 450조원을 넘어섰다. 우리나라에선 64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 다음으로 ‘큰손’인데, 외환보유액이 매해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고 있기 때문에 외자원이 언제 우리나라의 가장 큰손이 될지 모를 일이다.

이런 가운데 본지는 지난 11일자 ‘외환보유액 사상 최대…한은 운용수익은 급감’이란 기사를 통해 작년도 외자원의 외화자산 운용순익이 8조8000억원에 그쳤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단독 보도했다. 이는 순익 규모가 12조4000억원을 기록했던 지난 2012년보다 무려 29%(3조6000억원)나 감소한 수치다.

여기에 수익률 추이를 살피기 위해 자료를 제공한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심재철 의원실과 공동으로 외환보유액 대비 외화자산 순익 비율(작년말 환율 적용)을 계산해봤더니 지난해 1.95%를 기록, 8년새 수익률이 절반 정도로 급감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자원이 외화자산의 총규모를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외화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환보유액을 차용해 산출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보도 직후 한은은 보도해명자료를 통해 외환보유액과 외화자산이 등치 개념이 아니란 점에 집중했다.

외환보유액은 한은 보유분 뿐 아니라 정부 보유분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외화자산 운용순익액을 단순히 외환보유액으로 나누는 건 잘못됐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해당 기사에서 밝힌 수익률과 한은이 계산한 외화자산의 수익률이 전혀 다르다며 자료를 마무리했다.

만일 한은의 주장대로라면 외환자산 규모를 공개하든지, 아니면 한은이 자체 집계한 수익률을 공개해 사실과 다른 부분을 소명해야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외화자산 순익이 30%가량 줄어든 것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아쉽다. 사실 이번 보도의 중점은 외자 수익이 어떻게 이처럼 단기간 내 줄어들었는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기사를 접했을 때 한은으로부터 듣고 싶은 내용은 개념의 기술적인 차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국민 혈세로 만들어진 외화 자산의 순익 급감에 대한 자성적이고도 정밀한 원인 규명과 특단의 개선 방안을 담은 책임있는 설명이었다. 이 때문에 한은의 이번 해명을 두고 본질을 빗겨갔단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에 대해 안정성과 유동성 확보를 우선으로 한다는 운용 원칙을 세우고 있지만, 수익성 제고도 분명 운용 목적에 포함시키고 있다. 외환보유액 유지를 위한 통화안정증권 이자비도 연 3조원을 웃돌고 있어 나라 예산이 투입되는 천문학적 기회비용의 보전 차원에서라도 수익성에 보다 무게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은의 외화자산 중 현금성자산(작년 기준)은 5.3%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4.7%는 모두 투자자산이다. 투자자산 비중이 높다는 것은 스스로 투자 대비 수익을 운용 방침의 중요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준다.

더욱이 작년에는 외환보유액 대비 외화자산 순익 비율이 저축 이자율을 밑도는 실정이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말 정기 예ㆍ적금 등 순수저축성 예금 금리는 2.05%였다. 이처럼 외자원이 은행 이자만큼도 수익을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만큼 한은은 사태 수습에 급급하기보다 위기의식을 느끼고 수익률 제고 방안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의 최종 대부자(貸付者) 기능 훼손을 이유로 오래 전부터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입장 뒤에만 숨어 있을 게 아니다. 차라리 다른 공적 기관인 국민연금과 한은이 외화자산 일부를 위탁하고 있는 한국투자공사(KIC)처럼 수익률을 투명하게 공개해 당당히 국민들의 엄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서경원 IB금융섹션 IB증권팀 기자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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