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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변호사”라고 해서 맡겼는데…역량은 천차만별
전문변호사 등록제 10년 돌아보니…

60여개 분야…1882명 활동중
특정분야 30건이상땐 등록 가능
새내기변호사 홍보용으로 이용
전문변호사 아닌데도 심사위원
‘수십년 외길’도 등록해야 ‘전문’
해당분야 없어 ‘표시’ 못하기도


#. 변호사 A씨는 대한변호사협회 전문분야 등록제 심사위원이다. 전문변호사 등록을 신청한 변호사들이 요건을 갖췄는지 심사하는 게 A 씨의 역할이다. 그러나 정작 A 씨는 대한변협에 등록된 ‘전문 변호사’가 아니다.

#. 변호사 B씨는 13년 간 성범죄 피해자들의 변호를 해왔다. B씨는 물론 그가 속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모두 파산, 기업회생 등 특정분야를 몇십년 간 전문적으로 다뤘지만 ‘전문 변호사’라고 표시할 수 없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법조계에서는 이 제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면서 사실상 불합리한 ‘규제’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2일 대한변협에 따르면 현재 전문분야 등록제도는 60여개 분야를 정해 운영하고 있다. 3년 이상 법조 경력요건을 가지고 해당 전문분야 사건을 30건 이상 처리한 경험만 있으면 등록이 가능하다. 전문변호사로 등록하면 광고에 ‘전문’이라고 표기할 수 있다. 법률소비자 입장에서는 특정 분야 전문가라는 말을 믿고 찾아가더라도 실제 그만한 기량을 갖췄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셈이다.

등록제를 이용하는 변호사는 지난 11일 기준 1882명이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변호사 수가 2만 5838명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7.28%만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등록요건도 집행부에 따라 기준이 매번 바뀌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나승철 변호사는 “의사같은 경우 레지던트를 거쳐 몇 년간 전문화를 하는 기간이 주어진다”며 “하지만 현 전문변호사 등록제도는 법률에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수임사건과 몇 시간의 수강이 이뤄지면 ‘전문’ 표시를 딸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의대처럼 교육과정에서 전문화 과정이 없는 전문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요건이 완화된 이후 실제 사건을 많이 다뤄본 변호사들보다는 신참 변호사들이 홍보에 이용하기 위해 등록하는 상황”이라며 “전문변호사로 등록이 되지 않았는데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변호사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등록제도가 사실상 불필요한 규제로 이어진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고 ‘전문’ 등을 광고 문구로 쓰면 변협이 징계처분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판사 출신 김관기 변호사는 변협의 등록제도를 이용하지 않은 채 ‘파산법 전문’ 문구를 넣었다가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법조계에서 파산 분야, 특히 개인회생 분야 전문가로 손꼽힌다. 한국도산법학회 이사와 도산법연구회 이사, 법무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개정 위원을 지냈고 20년 간 파산 관련 사건을 집중적으로 맡았다. 김 변호사는 징계가 부당하다며 법정다툼까지 벌였지만 패소했다.

김 변호사는 “국회에서 입법적으로 해결할 사안을 협회 회칙으로 전문분야를 평가하는 건 맞지 않다”며 “사건 수임을 많이 했다고 해서 전문성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나승철 변호사는 “등록제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라면서 “전문변호사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전문’표시를 사용하지 않게 하는 건 과도한 규제”라고 말했다.

전문분야가 10개에서 60개로 세분화됐지만, 여전히 전문분야를 다양하게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변협 조직이 바뀔 때마다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는 일관되지 못한 기준도 문제다.

국내 유일의 성년후견제도 전문가인 이현곤 변호사의 경우 판사시절 성년후견제를 준비하는 단계부터 참여해 제도가 시행된 직후 최초의 후견 심판을 맡았지만 ‘전문’이라는 표기를 하지 못한다. 당시 대한변협 전문분야에 ‘성년후견’은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년후견 분야는 올해 들어서야 신설됐다. 이 변호사는 “전문분야 등록제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등록제의 존재의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 보완을 통해 풀어야지, 폐지를 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변협관계자는 “등록제도 기준이 오히려 까다로우면 까다롭지, 약하거나 주관적이라는 지적은 없다”며 “국민들이 능력있는 변호사는 선별하는 데에 기준이 될 수 있는 제도이고 변호사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강조하면서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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