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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빛바랜 청사진…떠나는 연구자
2년 전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은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로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취임 후 그는 프랑스를 전통적인 ‘문화강국’에서 ‘과학기술강국’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전세계 ‘인공지능(AI)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국내총생산(GDP) 중 3%를 연구비에 쓰겠다고 공언했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이런 마크롱의 정책에 기대를 걸었다. 안정적인 연구비와 연구 환경이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하지만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로 상황은 반전됐다. 빈곤층을 중심으로 시작된 시위는 대중운동으로 발전했고 프랑스를 넘어 전유럽을 강타했다.

60%를 웃돌던 그의 지지율은 신기루가 됐다.

마크롱에 지지를 보냈던 과학자들도 그에게서 돌아섰다. 특히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일방적인 대학 등록금 인상안 발표가 결정타가 됐다.

과학계는 공공 연구에 대한 위협이라며 비판했다. 프랑스와 다른 나라들 간의 과학적 교류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거세졌다. 17개 대학이 노란조끼 시위에 가세했고 대학의 연구자들 가운데 일부는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면 비슷한 시기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과학기술계에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과학기술정책, 연구자 중심의 연구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연구자들의 시선과 평가는 냉소적이다. 정책은 피부로 와 닿지 않고 이렇다할 규제 개선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들이 많다.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한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보여주기식, 선언적 구호로 퇴색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차량공유 서비스는 본격적인 논의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다. 블록체인 암호화폐도 규제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정부가 홍보하는 ‘R&D 예산 20조원’ 달성도 이면을 들여다 보면 씁쓸하다. R&D 예산증가율은 9년째 감소 추세고 올해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은 오히려 줄었다. 10% 이상 감소한 곳도 있다.

내년 국가 R&D 전체 예산은 더 줄어든다. 안정적인 연구 환경 조성을 위해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개선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1996년 도입된 PBS는 출연연구기관이 외부 연구 과제를 수주해 인건비를 충당하도록 하는 제도다. 연구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연구자들이 ‘영업맨’으로 전락되는 폐해만 낳았다.

정부는 PBS는 유지하면서 개별 출연연의 새로운 ‘역할과 책임’(R&R)을 중심으로 예산구조를 개편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부는 이를 두고 출연연 혁신이라고 얘기하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예산 통제라고 비판한다. 정부 R&D 방향을 기준으로 인센티브를 주고 예산을 삭감해 버리는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라는 것이다. 연구 기관의 자율성이 배제된 ‘정부 친화적’, ‘관료주의적’이라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적은 예산과 시간 부족으로 원천 연구는 이렇다 할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연구비는 줄어들고 연구 환경이 공격 받고 있는 현실을 피해 연구자들은 해외로, 대학으로 떠나고 있다고 한다.
 
최상현 미래산업섹션 에디터 bon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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