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문화축전의 한 프로그램으로 종묘제례악보존회가 공연하는 종묘제례악 야간공연에 다녀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종묘제례악은 종묘에 제사를 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 그리고 의식무용인 일무의 세 가지 구성이 함께 연행되는 총칭으로, 500년 이상 전승되어 온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리고 매 년 5월 이맘때 종묘에서는 종묘대제가 거행된다.
종로의 화려한 밤, 그러나 종묘에 들어서는 순간 어둠이 내려있는 고요함과 마주했다. 이곳이 정말 서울의 한 복판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무가 울창하게 둘러싸고 철쭉꽃이 만개해 있는 고즈넉한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종묘의 정전으로 들어선다. 하늘 높게 뻗은 울창한 나무들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에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의 옆으로 길게 증축된 목조건물 ‘정전’이 그 장엄함과 경건함을 품은 채 자리하고 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이 시작되고, 짙은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은 정전의 모습은 감히 범할 수 없는 신성함의 경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 정취에 취한 관객들의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나온다.
정전 앞에서 펼쳐진 이 공연은 북과 장구 등의 타악기와 태평소와 대금 등의 관악기, 해금과 아쟁 등의 현악기가 양편으로 나누어 배치되어 있는 가운데, 64명(김한나 외 63명)의 무용수가 등장했다. 무용수들의 춤은 ‘일무’를 중심으로 펼쳐졌는데, 극도의 절제미가 돋보이며 매우 간결하고도 단순한 춤사위를 보였다. 일무에서 추어지는 모든 동작은 제례악에 맞춰 무려 64명의 무용수가 동시에 움직이는데, 작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동작 하나하나는 무게감 있는 품격이 묻어났다. 일무 중에서도 왼손엔 피리 종류인 ‘약’을, 오른손엔 꿩의 깃털을 단 ‘적’을 들고 정성스럽게 움직이는 ‘문무(文舞)’를 보고 있자니 종묘제례악의 동양적 정신세계와 아름다움이 주는 매력에 한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한편, 축전의 마지막 날에는 웃는 봄날의 연희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戱)’가 열렸는데, 이 공연은 덕수궁 중화문 앞에 에어돔으로 재현한 협률사에서 펼쳐졌다. 특히 축전 전체의 행사 중 마지막 방점을 찍은 공연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이자 안무가인 국수호를 비롯하여 한국 춤을 대표하는 남자 명무가(조재혁, 신동엽, 김승일, 김평호, 황재섭)가 선보인 ‘국수호의 남무전’이 공연됐다. 한 공연에서 만나기 어려운 남자 춤꾼들의 명무전은 축제의 마지막 밤을 장식하며 궁중문화축전의 큰 의미를 남겼다.
매 해 ‘궁’에서 펼쳐지는 이 행사는 궁을 중심으로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과 전통문화가 시공간을 초월하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올 해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며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다시금 깊게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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