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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근대미술이 싹트던 시기, 이들도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 절필시대’전
결혼ㆍ지병ㆍ월북ㆍ이주 등으로
국내 평단서 저평가된 작가 조명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정찬영, 백윤문, 정종여, 임군홍, 이규상, 정규.

잊혀졌던 이름들이 돌아왔다. 한국 근현대미술이 싹트던 시절 당시 화단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으나, 결혼, 지병, 월북, 이주 등으로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작가들이다. 이들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덕수궁 전관에서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전을 30일부터 개최한다. 한국 미술사에서 저평가 된 근대 작가를 발굴, 재조명해 한국 근대미술사의 토양을 두텁게 하겠다는 것이 전시의 밑바탕이다.

전시를 담당한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한국 근대미술의 키워드로 ‘전람회’, ‘민족’, ‘모던’을 꼽았다. 

정찬영, 한국산유독식물(韓國産有毒植物) 중 천도백산차, 애기백산차, 노란만병초, 흰만병초, 1940년대, 종이에 채색, 106.5×7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백윤문, 건곤일척, 1939, 면에 채색, 150x165cm,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전시도 이 키워드를 따라간다. 채색화가인 정찬영(1906~1988)과 백윤문(1906~1979)은 대중의 취향을 탄생시킨 ‘전람회’라는 제도 위에 탄생한 작가다. 1부에서는 이 두 작가를 ‘근대화단의 신세대’로 소개한다. 일본화풍을 수용하면서도 일본 화가보다 더 뛰어난 세필 채색 화풍을 구사한 정찬영, 전통 서화와 근대 미술취향을 결합한 화풍을 완성한 백윤문의 작업은 당시 급변한 시대를 반영한다. 전시에선 정찬영이 남편이자 1세대 식물학자인 도봉섭과 함께 작업한 식물세밀화와 초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백문윤의 대표작으로, 내기 윷놀이를 하는 남성들의 한 때를 그린 ‘건곤일척’도 눈길을 끈다. 


정종여, 지리산조운도(智異山朝雲圖), 1948, 종이에 수묵담채, 126.5×380cm, 개인 소장.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임군홍, 가족, 1950, 캔버스에 유채, 94×126cm, 유족 소장.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일제강점기는 ‘민족’이라는 주체를 일깨운 시기기도 하다. 2부에서는 월북작가인 정종여와 임군홍을 ‘해방공간의 순례자’로 설명한다. 해방 후 1940년대까지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북한으로 건너간 이후 한국 미술사 연구에서는 사라진 작가들이다. 전시에서는 1940년 이전 작품과 자료를 소개한다. 정종여는 전국 방방곡곡을 순례하며 이를 화폭에 담았고, 임군홍은 중국으로 건너가 자금성, 이화원, 천단 등을 이국적 정취로 표현했다. 정종여의 ‘진주 의곡사 괘불도’(등록문화재 제 624호)는 전통 불화양식과 달리 명암을 활용한 옷감의 표현, 빠른 필치의 묘사 등이 파격적인 작품이다. 

정규, 오양빌딩 세라믹 벽화, 1964, 김수근 설계(촬영 명이식)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3부는 모던이라는 시대정신을 다룬다. 이규상과 정규를 ‘현대미술의 개척자’로 소개하며, 해방 후 한국현대미술 화단의 모습을 다각도로 추적한다.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1948년 ‘신사실파’를 결성한 이규상의 작업은 현대의 미감으로 보아도 모던함이 넘친다. 서양화가, 판화가, 비평가, 도예가로 광범위하게 활동했던 정규의 작업을 통해선 전통의 현대화와 미술의 산업화를 읽어낼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를 발굴해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의 다리를 놓는다는 지점에서는 무척이나 유의미한 전시다.

다만, 전시관람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절필시대’라는 부제다. 미술관측은 “일제강점기, 해방기, 한국전쟁시기, 전후 복구 등 격동의 시대에 자의 혹은 타의로 절필 할 수 밖에 없었던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과 미완의 예술세계를 주목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지만 6명의 작가들을 한데 묶기 역부족이다.

월북해 한국 미술계에선 사라졌지만 정종여, 임군홍 모두 북에서 추앙받는 화가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다른 작가들의 ‘절필’도 시대 항거의 의미보다 절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 크다. 또한 이 당시 시대의 엄혹함 속에서도 끝까지 활동했던 작가들도 분명 존재한다. 이규상과 동시대 작가로 꼽히는 유영국의 대대적 회고전이 불과 2년 전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절필시대’라는 프레임에 아쉬움이 큰 이유다. 전시는 9월 15일까지 이어진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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