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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봉준호 장르-최태원 장르
“봉준호 감독 머릿속엔 완벽한 편집본이 이미 들어 있다. 찍고 편집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 편집본대로 찍는다. 집을 지으면서 ‘못 한 포대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못이 53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벤저스의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번스가 봉 감독과 ‘설국열차’를 찍고 한 말이다.

영화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100주년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선물한 봉 감독은 ‘봉테일(봉준호+디테일)’로 불린다. 그는 각본의 모든 장면을 그려 만화책 처럼 만든 뒤 배우들에게 보여주고 “여기 서서 이렇게 움직이면 된다”는 식의 지침을 준다.

최태원 SK 회장은 2014년, 영어(囹圄)의 몸으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라는 책을 냈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겸비한 사회적 기업이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봉 감독의 ‘기생충’이 빈부 양 극단에 서있는 두 가족이 뒤얽히고 충돌하는 얘기지만 공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처럼.

최 회장이 참회와 성찰의 공간에서 600여일을 보내며 ‘사회적 기업’을 필생의 과업으로 제시했지만 당시 사회적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진정성을 입증하려면 손으로 만져지는 디테일이 중요했다. 많은 사람이 최 회장의 ‘그후 행보’를 지켜봤다. 그는 5년 전 화두로 꺼냈던 사회적 기업론을 이제 눈으로 보고 만지고 즐기는 단계로 까지 진화시켰다.

최 회장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로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회적 가치 측정 회계시스템인 더블 바텀 라인(Double Bottom Line)이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SK이노베이션 1조1610억원, SK하이닉스 9조5197억원…. 얼마전 SK 주요 계열사들은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처음으로 공표했다. 온실가스 배출 같은 부정적 영향도 그대로 고백했다. 전국에 깔린 SK주요소를 로컬물류의 거점으로 사회에 제공하는 공유경제 프로젝트도 가동 중이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를 실행하는 ‘착한 기업’과 어깨를 걸고 연대하는 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배우 송강호가 봉 감독의 ‘페르소나’ 이자 동반자인 것 처럼. 지난달 열린 ‘소셜밸류커넥트(SOVAC) 2019’ 는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열린 최초의 민간축제다. 188개 사회적 기업들은 최 회장이 깔아준 ‘판’에서 뛰고 있다. 최 회장은 사회적 성과를 화폐 가치로 측정하고 보상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 도 시행중인데 이번 축제서 87억원이 지급됐다.

국제영화제 수상작은 대게 흥행성적이 좋지 않다. 그러나 봉 감독의 기생충은 예술성과 대중성 두 토끼를 다 잡을 듯하다. 지금 흥행 속도라면 천만 관객도 바라볼 수 있다. 봉준호는 대담한 상상력, 새로운 캐릭터, 사회와 현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을 결합해 기존 공식을 넘어서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른바 ‘봉준호 장르’다. 최 회장과 연대하는 사회적 기업들도 공공성과 수익성을 겸비한 사업모델로 흥행가도를 달리길 바란다. 사회적 가치 경영이 한국을 넘어 세계의 기업사에도 최태원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날이 오기를 응원한다. 

문호진 소비자경제섹션 선임기자 m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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