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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 옐로 저널리즘이라고요?
얼마 전 서훈 국정원장과 양정철 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이 저녁을 함께 했다. 본인들은 사적인 만남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언론은 단순한 저녁자리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쪽에 방점을 찍었다. 현 정부에서 두 사람이 차지하는 무게를 감안한다면 미디어가 관심을 기울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양정철 원장 말대로 ‘오랜만에 밥이나 먹은 사적인 만남인데’ 미주알고주알 다 알려졌다. 심지어 모범택시를 탔고 요금을 누가 냈느냐 까지 보도됐다. 아무리 사사로운 조우라고 해도 영향력 있는 위치에 선 사람들이 회동했다는 것 자체는 뉴스거리가 된다. 사적이건 공적이건 유명인은 뉴스가 된다는 것은 저널리즘의 불문율이다(name makes news).

기사가 나가자 양정철 원장은 황색저널리즘 식의 보도라고 마뜩치 않은 심기를 드러냈다. 황색저널리즘은 미국 신문이 19세기 말 상업적인 이익만을 위해 경쟁하면서 게재했던 한 신문의 만평 주인공 어린이 머리가 노란색이어서 부쳐진 이름이다. 이것을 직역하면서 옐로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으로 알려진 것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저질, 저급 그리고 저널리즘 본령에서 일탈하여 극도의 상업주의에 매몰된 타락한 언론보도 태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옐로저널리즘에 대한 명쾌한 영역규정은 없다. 제대로 취재하지 않은 채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큰 제목이나 사진, 하찮은 사안을 부풀려 대단한 사건인양 포장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기사의 표현방법도 형용사나 부사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험담이나 조롱하는 투로 지면/시간을 채우기도 한다. 요즈음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합성사진을 용감하게(?) 게재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약자에 대한 지나친 동정으로 개혁에 앞장 선 것으로 오인하게 만들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거짓 인터뷰를 통해 적절한 취재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내 새우고 과학과는 거리가 먼 자료를 인용하거나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영혼이 없는 저널리즘이라거나 츄잉 검(chewing gum) 저널리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품격을 잃은 아니 저널리즘 본령을 어긴 기사를 뭉뚱그린 것이 옐로저널리즘인 셈이다.

서훈-양정철 회동은 언론의 구미를 끌만 한 일이다. 선거/정치 얘긴 없었다곤 하지만 그걸 믿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등장인물이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언론에게는 좋은 기사거리이고 그래서 그 장면을 기사로 옮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생각이다. 그냥 만났다고 해도 배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는 것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조용히 만나고 싶었는데 들켰다면 허허 웃고 지나가는 것이 현명한 뒷수습이다. 할 일을 한 언론을 폄훼하는 듯 옐로저널리즘으로 규정하는 것은 온당한 반응은 아니다. 담담하게 사실 관계를 설명하고 나머지는 국민 판단에 맡기는 것이 적절한 대응은 아니었나 싶다. 언론은 자기 일을 했을 뿐이다. 밥값이나 택시비 등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알려 기사의 품격이 다소 떨어졌지만 옐로저널리즘이란 평가는 과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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