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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망한 사람도 찬성표”…재건축·재개발 서면결의 무법천지
북아현 3구역, 800명 서면 대체
200여명 제출 부인 속 안건통과
용산정비창1, 조작 의심 CCTV 영상
반포1단지 3주구, 위조 발견 수사



부동산 전문가인 구만수 국토도시계획기술사사무소 소장은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자신이 조합원으로 있는 서울 북아현 3구역 재개발 총회에 서면결의서(직접 참여하지 않고 서면으로 안건에 투표하는 것)를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몰래 제출했기 때문이다.

구 소장은 “내가 제출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내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내려와 서울로 서면결의서를 동봉한 우편을 보내 부산 우체국 소인이 찍히게 치밀하게 위장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사업 추진의 핵심 수단인 서면결의제도를 둘러싼 비리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수의 사업장에서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뚜렷한 개선책 없이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북아현 3구역의 총회는 지난 3월 9일에 있었다. 그날의 총회는 비대위가 조합 집행부를 해임시키고 새로 조합장과 임원을 선출하는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열렸다. 총회는 조합원 1852명 중 과반인 996명이 참여해 의결정족수를 충족했다. 이중 170여명은 직접 참여했고, 나머지 800여명은 서면결의서를 제출했다. 안건은 통과됐고 집행부가 새로 꾸려져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총회 이후 구 소장처럼 ‘서면결의서를 제출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명의로 제출됐다’는 주장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의식을 가진 조합원을 중심으로 비슷한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다. 구 소장의 경우 필적감정까지 의뢰해 자신의 필적과 다르다는 감정결과를 받았다.

당일의 총회에 대해 문제삼고 있는 조합원 A씨는 “텔레마케팅(TM) 업체에 의뢰해 조합원들에게 서면결의서를 제출한 것이 맞는지 사실확인한 결과 200명 정도가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며 “조합원이 직접 제출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필적을 위조하거나 우편 소인을 위조한 사례가 다수 발견됐으며, 심지어 수년전 사망한 조합원의 이름으로까지 제출됐다”고 말했다.

조합 측은 근거없는 음해라는 입장이다. 조합 관계자는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있어 3월 총회에서 통과한 안건을 추인하는 총회를 5월에 열어 재차 통과됐다”며 “서면결의서가 조작됐다는 것도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A씨 등은 5월에 열린 총회 역시 서면결의서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에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용산정비창전면1구역에서 추진위원장이 제출된 서면결의서를 수정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일부분. 추진위원장은 서면결의서 제출 날짜에 오기가 있어 해당 토지소유주의 요청을 받아 수정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추진위원장의 해명이 사실이더라도 개인적으로 투표용지를 수정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용산구의 용산정비창전면 1구역도 서면결의서 위조 문제로 13일 검찰에 고소장이 접수될 예정이다. 이곳은 올초부터 정비업체와 설계업체 선정 문제로 추진위원회와 소유자들 간에 갈등이 이어졌다. 업체 선정을 위한 총회가 올해 들어 세번이나 열렸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서면결의서 위조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인데 뚜렷한 증거는 없었다.

그러다 최근 추진위원장이 서면결의서를 위조하는 정황이 담긴 CCTV 영상이 발견돼 의혹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지난달 18일 총회가 열리기 전날인 17일 찍힌 이 영상에는 추진위원장이 서면결의서가 담긴 우편봉투를 가위로 개봉하고 안에 담긴 서류를 조작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습이 담겨 있다. 당시 총회는 추진위원장 등 집행부를 해임하는 안건이 올라왔다.

한 관계자는 “서면결의서를 조작했음에도 해임에 찬성하는 다수 의견을 막지 못해 해임 안건은 통과됐다”면서 “이전 총회에서도 서면결의서 조작 의혹이 컸는데 이번에 확실한 증거가 발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추진위원장 C 씨는 “서면결의서에 날짜 오기가 있어서 수정 요청을 한 토지등소유자의 것에 대해서만 오기를 정정한 것”이라며 “오히려 당시 해임 총회를 주최한 측이 해임 찬성 서면결의자 명단만 공개하고 서면결의서는 공개하지 않아 조작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밖에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에서 올초 시공사를 교체하기 위해 열었던 총회에서도 서면결의서 위조가 발견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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