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사유하지 않음은 악의 원인’…아렌트의 생각을 들여다보다
“아렌트 자신의 가장 완숙한 정신세계를 이야기하기 형식으로 집필한 정치철학의 진수”.

30년간 한나 아렌트를 연구하고 아렌트학회장을 역임한 국내 최고 권위자 홍원표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아렌트의 마지막 저서 ‘정신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다. ‘정신의 삶’은 아렌트 스스로 꼽은 가장 중요한 저서이기도 하다.

아렌트는 우리 삶에서 정신의 삶이 왜 중요한지를 사유·의지·판단으로 나눠 조명하는데, 이 생각의 씨앗은 1961년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참관한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나타나는 천박함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아렌트는 이를 계기로 사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의 질문에 답해나가면서 사유하지 않음은 악의 원인이라는 결론에 닿는다.

아렌트에 따르면, 사유는 “나와 나 자신의 소리 없는 대화”다. 사유·의지·판단 활동은 지성이나 감정과 달리 현상세계로부터 잠정적으로 이탈할 때 비로소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유는 비가시적이지만 말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현상세계에서 대화는 소통이 중요하지만 사유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질문하는 사람이며 답변하는 사람”이 된다.

이런 정신활동은 흔히 철학자 등 전문가의 몫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아렌트는 우리 모두의 삶의 근본적 활동임을 강조한다. 눈에 보이는 노동이나 작업, 행위처럼 사유활동 역시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정신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당연히 나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강조한다.

또한 아렌트는 정신적 활동을 삶의 위에 두는 전통적 견해에도 맞선다. 활동적 삶은 사유, 의지, 판단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둘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정신활동인 의지는 정신 활동에 머물지 않고 행위를 촉진하는 근원으로 정의된다. 의지의 특징은 힘과 방향성이다. “의지는 집중 덕택에 첫째로 우리 감각 기관을 이미있는 방식으로 현실세계와 결합시키고, 이어서 이 외부세계를 사실상 우리 자신으로 끌어들인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의지는 긍정형태의 의지하기와 부정형태의 의지하기, 즉 원하다와 싫어하다로 나타난다.

아렌트의 ‘정신의 삶’은 사유, 의지, 판단의 정신 활동을 구름 위의 철학이 아닌 일상생활 속으로 끌어들인데 새로움이 있다.

아렌트는 ‘정신의 삶:사유’, ‘정신의 삶:의지’를 집필한 뒤, 일주일 후 ‘정신의 삶:판단’을 시작하던 1975년 12월4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책은 1장 사유와 2장의 지로 나누고, 판단은 부록으로 실었는데, 아렌트의 강의록 ‘칸트 정치철학 강의’를 ‘판단’으로 대신했다. 완성되지 못한 3부작의 마지막, 칸트만이 ‘판단력비판’을 통해 다룬, 판단에 대한 아렌트 생각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