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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對日 적자민국’의 역사
최근 우리 경제에 드리운 경기 둔화의 먹구름은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부진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다른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어쨌든 현재로선 반도체 경기 회복이 간절한 때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조치 품목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트리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 모두 반도체 소재들로 전세계 공급량의 70~90%가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우리 경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일본이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가장 뼈아파할 만한 품목들만 골라 조치를 단행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교역에서 한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대일(對日) 경상수지는 해당 통계 편제를 시작한 지난 1998년 이래로 작년까지 21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경상수지란 다른 나라와의 상품과 서비스, 자본 등의 이동에 따른 수입과 지급을 종합 산출한 것이다.국가간 손익계산서라고 생각하면 쉽다.

세계 여러 나라들 중 우리나라가 만성 적자를 보고 있는 나라는 산유국을 제외하면 일본이 유일하다. 1998년만 해도 16억달러 수준의 적자를 나타냈지만, 2000년대 들어 규모가 100억달러대로 껑충 뛰었고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매해 200억~300억달러 수준의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년 만에 규모가 15배 수준으로 껑충 뛴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우리가 매해 200억~30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같은 아시아국인 중국은 이보다 많은 400억~500억달러의 흑자를 매해 안겨주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결과적으론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실익을 챙겨간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상품·서비스·소득수지에서 고루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상품의 수출 뿐 아니라 서비스와 자본 거래에 있어서도 교역 불균형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상품수지는 이번 조치 품목과 같은 소재·부품과 기술력 수입 의존도가 높아 마이너스이고, 서비스수지 적자도 우리 국민의 일본 여행이 많아지면서 여행수지가 악화된 것 등에 기인한다.

지난 2009~2012년만 해도 흑자를 보였던 대일 여행수지는 2013년부터 전세가 역전되더니 작년까지 6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 국민의 일본 관광객수가 늘면서 2013년 2억달러 수준이었던 연간 적자폭은 현재 30억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작년 일본에 대한 여행지급도 51억7000만달러로 전년보다 4.2%(2억1000만달러) 늘었다.

소득수지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투자가 많아 배당으로 챙겨가는 수입이 많기 때문에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경상수지보다 통계가 더 오래된 무역수지를 보면 우리가 일본에 대한 ‘만년 적자국’이었다는 점을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일본과 청구권 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던 지난 1965년부터 작년까지 대일 무역적자는 무려 54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1억달러에서 시작한 연간 무역적자는 이제 200억달러 수준까지 규모가 늘어 현재까지 누적 적자액은 700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일각에선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약탈을 일삼았던 과거 강점기 시절까지 감안한다면 대일 적자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가 원유수입국도 아닌 일본에서 유독 적자가 심한 주된 이유는 반도체 등 주력 산업 소재에 대한 기술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대일 무역적자 99억달러 중 전자부품과 화학물질·제품 등 소재·부품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단숨엔 어렵더라도 지금부터라도 일본을 대체할 수준의 자체 기술력 확보에 정부와 민간이 힘을 모아야 하겠다. 그래야 정치 문제로 경제가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서경원 IB금융섹션 금융팀 기자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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