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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송영훈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남북한 ‘사람 농사’는 멈출 수 없다
‘남북관계에도 사람 농사가 우선이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후 담당했던 아카데미에서 진행된 남북농업협력 전문가 강연에서 나온 말이다. 국제정치를 전공한 학자에게 매우 생소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시간이다. 법과 제도, 정치적 협상을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의 틀에 갑작스럽게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남북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때에도 현장에서는 남북의 파트너들이 함께 일을 했다. 남북관계와 국제관계의 정치지형에 따라서 교류가 제약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 실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파트너들의 신뢰가 필요한 것이다. 남북교류사업을 직접 수행했던 분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감자농법을 전수하건, 옥수수 씨앗을 전달하건, 의료물품을 전달하건 사업은 모두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많은 단체와 기관들이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 사업의 내용과 형식들에서 새로움을 찾기가 어렵다. 10여 년간의 남북관계의 단절과 대북제재가 남과 북 파트너들의 관계 단절, 전문가들의 이직, 새로운 전문인력 충원 부족 등으로 인한 결과 때문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업이 10년 전 사업과 유사하다는 평가는 피할 수 없다.

남북관계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품은 이들을 남북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도 않다. 지역기반 창업교육을 하는 벤처회사의 청년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북한의 청년들과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회간접시설 건설과 대규모 마을 개선 사업과 같은 큰 사업이 아니더라도 당장 북한의 청년들이 경제적 성과를 얻어낼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보겠다고 한다. 북한의 청년들도 잘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그들과 찾아보겠다고 한다.

북한의 청년들의 꿈이 남한의 청년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중국의 한 대학에서 열린 농업생명 분야 심포지엄에서 만난 북한의 한 대학원생은 동충하초를 이용해서 어떻게 경제적 이익을 더 많이 창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도 고민이지만 실험 성과를 가지고 개인은 물론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가 고민하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한국 대학들이 강조하는 산학협력의 내용과 다름없었다.

남북한과 중국의 연구자와 대학원생들이 연구 성과를 치열하게 논하였지만,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남북의 연구자들이 다양한 관계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치적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로서의 열정과 책무의식은 공유되고 있었다. 사회과학자로서 북한 연구의 수준을 관찰하고 싶은 마음에 참가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과학자들 간에 진행되는 ‘사람 농사’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경계과학자’였다. 과학자들만 참가하는 심포지엄에 정치학자가 참가하는 것이 생뚱맞아 보일까봐 걱정했는데, 그들은 나를 융합과학을 하는 연구자로 바라본 것이다. 그 곳에서는 모두가 오로지 과학자의 역할에 집중하고, 서로의 성과를 어떻게 확산할 것인가를 공유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조만간 유학을 떠나는 북한 대학원생에게 하는 격려는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회담 이후 잠시 정체되었던 남북관계는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으로 다시 기지개를 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질적 교류가 이뤄지기 위해서 대북제재 완화와 북한의 비핵화라는 국제정치적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

남북교류 사업을 추진하고자하는 한국의 청년들, 먹고사는 문제를 과학기술 발전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북한의 청년들 모두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중요한 자산이자 미래다. 이것이 기존 남북교류 사업에 새롭게 추진할 사업을 개발하는 청년들에게 지원하고, 남북의 청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지식교류 또는 지식공유사업의 활성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들이 함께 창업을 하고, 논문을 쓰고, 사업을 구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 있다면 남북교류는 진화의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송영훈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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