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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소연의 현장에서] 과도한 규제 탓에 소비자는 불편하다

워킹맘 A(37)씨는 9일 출근은 했지만 머릿 속이 복잡해 일이 손에 안잡혔다. 추석 연휴 전날인 11일의 가상 동선을 짜보는데, 영 신통치 않은 탓이다. 보통 전주 주말에 차례상에 올릴 음식 재료를 구매한 후 연휴 전말 보냉백에 넣어 용인 소재 시댁으로 가져갔지만, 올해는 7일은 태풍으로, 8일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장을 못봤다. 덕분에 연휴 전날 퇴근하자마자 마트로 달려가야 할 판이다.

A씨는 “가장 가까운 전통시장은 주차가 어려운데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둘이나 있다보니 전통시장을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평소 대평마트 의무휴업에 크게 불편함이 없었는데, 올해는 분통이 터질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전국 대형마트 406개 점포 중 70% 이상이 유통산업발전법상의 의무휴업 규정 때문에 문을 닫았다. 한국체일스토어협회가 지난달 전국 189개 시·군·자치구에 ‘추석 직전 의무휴업일을 추석 당일(13일)로 변경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지만, 허가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8일 휴업으로 규제 대상이었던 ‘유통 공룡’들의 매출 급감은 예상했던 일이라 해도 A씨처럼 장 볼 시간이 부족한 워킹맘의 불편함은 어디에도 하소연 할 때가 없다. 전통시장의 접근성이나 인프라가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출 만큼 개선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마트 문을 닫는 게 전통시장을 돕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수년 간의 경험을 통해 증명됐는데도 규제 당국은 요지부동이다.

덕분에 워킹맘들은 올해도 연휴 전날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장을 보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한 후 혹여 제때 도착하지 못할까 마음을 졸여야 한다. 장을 보는 것 마저도 남들보다 더 마음을 써야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현재 맞벌이 가정의 비중이 46.3%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명절을 준비하는 주부 2명 중 1명은 정부 규제 때문에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유통업계에 들이댄 강력한 환경규제도 소비자의 편의를 침해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마트 내 자율 포장대에 있는 종이상자를 없애는 규제다.

지난달 말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농협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 4사는 환경부와 ‘장바구니 사용 활성화 점포 운영 자발적 협약식’을 체결했다. 이 협약의 주요 내용은 2~3개월간 준비 기간을 거쳐 매장 내 재활용 종이상자와 포장용 테이프, 끈 등을 없애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오는 11월부터 마트 내 자율 포장대가 없어져 장바구니를 가져오거나 매장에서 새 종이상자를 구매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가 이같은 협약을 주도한 것은 마트 자율포장대에서 사용되는 테이프나 끈 등 플라스틱 폐기물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지만, 소비자들의 반발은 상상 이상이다. 어차피 마트에서도 종이상자는 재활용 처리할텐데 소비자가 다시 쓰는 것까지 막는 건 무리한 처사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테이프나 끈이 문제가 된다면 이를 종이와 같은 친환경 소재로 대체하면 되지 종이상자 제공까지 막는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특히나 이번 규제가 ‘탁상행정’이라고 비판받는 것은 유통 현장에서 종이상자의 소비자 효용을 너무 모르는 상황에서 쉽게 내린 결정이라는 점이다. 보통 대형마트에 가면 소량보다는 대량으로 장을 보는 경우가 많다. 시중에 나온 10~20ℓ들이 장바구니로는 구매한 물건을 집까지 운반하기가 사실 어렵다. 특히 최근에는 속비닐 사용 규제로 생선이나 고기류가 예전만큼 견고하게 포장되지 있지 않다보니 종이상자의 효용성이 더 커진 상황이다.

정부의 유통업계에 강력한 환경규제에도 일회용품 사용량이 실제로 줄어들었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속비닐 사용 규제로 개별 상품들은 오히려 더 많은 비닐로 겹겹이 포장돼 나오고, 아직도 ‘1+1’ 제품들은 포장용 테이프로 둘둘 말아서 판매된다. 과자나 우유, 요구르트 등 2~10개씩 묶어 파는 상품들은 여전히 필요 없는 비닐에 모아서 포장된다.

신선 제품 새벽배송도 상품의 신선도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스티로폼 박스에 개별 포장돼 배달된다. 배달음식은 메뉴 하나하나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내주고, 일회용 숟가락이나 젓가락도 충분히 가져다 준다. 덕분에 배달 음식을 1주일에 2~3번만 시켜도 어마어마한 플라스틱 용기 때문에 아파트 재활용 날이 무서울 정도다.

소상공인 보호나 환경 지킴 등 정부가 유통업계 규제를 통해 추구하려는 가치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다. 문제는 유통 환경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무분별하게 ‘안된다’라고만 외치는 점이다. 유통업계는 수 년간의 경험으로 이미 정부 규제로 이골이 난 상태지만, 소비자들이 생활 속에서, 특히 물건 구매 과정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익숙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갈수록 임계치에 다가가고 있을 정도다. 정부는 ‘소비자’도 정부가 보호하고 배려해야 하는 ‘국민’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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