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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가가 그린 의문의 그림 ‘연평초령의모도'의 진실
정민 교수 “모두 가짜” vs 화가 신상웅 “박제가+나빙 합작품”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청나라 문물을 적극 수용해 부를 증대시켜야 한다는 ‘북학의’로 유명한 실학자 박제가(1750년 ~ 1805)가 미스터리한 그림을 남긴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의문의 작품은 ‘연평초령의모도(延平髫齡依母圖)’. 청나라에 저항한 명의 장수 정성공의 소년기를 그린 것으로, ‘어린 연평이 엄마에게 의지해서 살다’ 쯤으로 해석된다. 그림은 정성공의 어머니 다가와가 나무와 바위를 배경으로 마당에 놓인 평상에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과 2층 난간에 소년 정성공이 개를 안고 서서 기암괴석과 멀리 후지산 쪽을 바라보는 서양화풍 그림이다.

박제가의 ‘연평초령의모도(延平髫齡依母圖)’.

그림 위쪽 왼쪽에는 박제가가 그리고 기록한다는 화제가 붙어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명나라 말엽에 정지룡이 일본에서 장가들어 아들 성공을 낳았다. 지룡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성공은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서 살았다. 우리나라 최씨가 일본에서 예술로 노닐다가 이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초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제 최씨는 죽고 그 초고가 내 선생님 댁에 남아 있어 이를 보고 그렸다. 붉은 옷을 단정하게 입고 앉아 있는 사람은 지룡의 아내인 일본인 종녀다.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칼을 차고 놀고 있는 아이가 성공이다. 박제가가 그리고 기록한다”

이 그림의 주인공 정성공은 명나라를 지키기 위해 청나라에 끝까지 저항했던 인물로 청에게는 적대세력의 우두머리인 셈이다. 그런데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박제가가 왜 하필 그런 인물을 그린 걸까. 더욱이 그런 인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대청제국에 알려진다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림 기법적으로도 어색한 구석이 많은 이 그림에 오랫동안 의문을 품은 화가 신상웅이 박제가와 정성공, 사신으로 베이징에 갔던 박제가와 각별히 교유했던 청나라 화가 나빙의 발자취를 십수년간 찾아나선 끝에 저서 ‘1790년 베이징’(마음산책)에서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냈다.

신 씨는 중국풍과 일본풍이 동시에 등장하고 그림의 수준이 숙련된 화가의 솜씨와 그렇지 않은 부분이 공존한다며, 이는 한 사람이 그린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1층의 다가와를 중심으로 한 그림이 중국풍이라면 2층의 정성공과 배경은 일본풍이다. 다가와의 경우 일본여성임에도 중국식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고 불교적 분위기가 풍기는 반면 어린 정성공은 일본도를 차고 있고 일본 회화에서 보이는 기법으로 바위와 배경이 처리돼 있다. 신 씨는 1790년 겨울 박제가가 두 번째 베이징을 방문, 8월 첫 방중때 정을 쌓았던 화가 나빙과 친밀하게 교유하면서 함께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림의 어색한 불협화음은 그린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 뿐 아니라 그림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신 씨는 그림 속 모자가 같은 시공간에 함께 있는 게 아니라 독자적인 상황에 맞춰 ‘따로’ 그려쟜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따라 어린 성공의 모습은 중국 취안저우로 건너간 성공이 일본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으며, 다가와 역시 아들이 떠난 뒤 홀로 남겨진 모습이거나 훗날 비극적 생을 마감한 또 다른 그녀의 초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내용과 형식 모두가 박제가와 나빙이 가지고 있던 다나가와 어린 성공에 대한 정보의 종합”이라는 게 신 씨의 해석이다. 작품으로서의 그림이라기 보다는 화가의 염원 혹은 희망과 회한의 감정들이 뭉뚱그려져 다가와와 정성공에게 바쳐진 추모 내지 헌상에 가까운 그림이란 것이다.

이 그림은 진위 논란이 진행중이다. 미술사학자 이동주는 ‘한국회화소사’(1996년)에서 박제가가 그렸는지 진위여부가 불분명하고, 18세기 청나라 화가 나빙의 흔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정민 한양대 교수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2014)에서 박제가가 그린 것이 아니고 친필도 박제가가 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첨부된 청나라 말의 학자 초순의 글씨도 친필이 아니고 수장인의 도장도 위작이라는 것이다. “누가 그렸는지 알 길이 없는 그림 외에 나머지는 다 가짜”라고 정 교수는 주장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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