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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김준형 의사 칼럼니스트] 정의의 이름으로

1967년 6월, 이란의 ‘팔레비국왕’이 독일을 방문했다. 독일의 대학생들은 독재자 팔레비국왕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당시 이란은 독일에게 있어 중요한 무역 파트너였다. 독일 정부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한 대학생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 젊은이들은 극도로 분노했다. 급진적인 사상에 심취해 있던 ‘안드레아스 바더’와 동료들은 무력항쟁을 계획했다. 그들은 프랑크푸르트의 백화점 두 군데에 불을 질렀다. 바더는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한 여성 언론인 ‘울리케 마인호프’는 이 젊은이들과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마인호프는 바더를 인터뷰한다고 속이고 교도소로 가서 바더를 탈옥시켰다. 이들이 힘을 합쳐 만든 조직이 ‘독일 적군파’이다. 독일 적군파는 팔레스타인으로 가서 전문적인 테러 교육을 받았다.

1972년 귀국한 그들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미군을 죽이고 경찰서에 폭탄테러를 했다. 감옥에 있는 동료들과 교환을 위해 정치인을 납치하기도 하고 비행기도 납치했다. 마음에 안 들면 판사와 검사도 죽였다. 독일 적군파 테러는 한 동안 독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공포는 1976년 핵심 인물들이 검거되면서 끝이 났다.

근래의 가장 무서운 테러집단은 단연 이슬람 무장단체인 ‘IS’이다. 독일 적군파와 IS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그들의 ‘모순성’일 것이다.

시위 도중 대학생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은 당연히 잘못된 일이고 정의롭지 못 한 일이다. 바더와 마인호프는 분노했고 정의를 외쳤다. 그러나 그들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

IS 역시 마찬가지다. IS는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살인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IS가 알라 신의 영광을 위하여 선택한 방법은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정의의 이름으로 금지된 것은 정의라는 명분하에 허용되었고, 신의 이름으로 금지된 것은 신의 영광이라는 명분하에 허용되었다. 이들이 인간세상의 일그러지고 모순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은 아닐까?

최근 우리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일본과의 무역 분쟁, 지소미아 파기, 조국 법무부장관 논란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은 둘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 중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의견 대립은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설사 의견이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부강한 나라, 정의로운 사회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을 들여다보면 실망을 넘어 절망에 빠진다. 진정 정의로운 사회를 바란다면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토론은 대안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서 토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설사 토론이 시작되더라도 오래가지 못 한다. 논리적으로 밀리면 상대를 인격적으로 모독하기 시작한다. 상대가 한 말의 내용을 부정할 수 없으니 말 한 사람의 인격을 부정해 버리는 방법이다. 이렇게 토론을 이전투구 양상으로 만들어 불리한 상황에서 빠져나가려 할 뿐이다. 이들은 대안에 관심이 없다.

서로에게 가하는 인격적 모독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인터넷 공간에서 ‘수꼴(수구꼴통의 줄임말)’, ‘좌빨(좌익 빨갱이의 줄임말)’이란 말은 흔한 용어가 돼 버렸다. 일부 사람들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만이 진정한 애국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행동은 건강한 토론을 막는 폭거일 뿐이다. 이것은 폭탄 없이 이루어지는 또 다른 테러다.

정의라는 명분에 빠져 폭력을 합리화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 중국의 문화혁명 같은 사건들도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잔인한 학살이었다.

우리는 진정 정의를 바라는 것일까? 정의의 이름으로 스스로의 폭력을 합리화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런 합리화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광기(狂氣)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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