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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김준형 의사 칼럼니스트] 바뀐 세상을 사는 사람들

우리나라 최초의 컴퓨터는 1967년에 도입된 IBM의 ‘1401’과 후지쯔의 ‘파콤222’였다. 최초의 컴퓨터가 두 개가 된 것은 문서상 기록 때문이다. 인천공항에 컴퓨터가 들어온 시점은 파콤222가 3월 27일, IBM1401이 4월 15일로 파콤222가 먼저다. 그러나 통관일자는 IBM1401이 4월 25일, 파콤222가 5월12일로 IBM1401이 먼저다.

당시 컴퓨터는 엄청나게 큰 덩치라 5대의 대형 트럭에 나눠 싣고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운반되었다. 이렇게 한국 땅을 밟은 IBM1401은 경제기획원 통계국에서 인구센서스에 사용되었고, 파콤222는 생산성본부에서 통계를 작성하는 데 사용되었다. 하지만 컴퓨터를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일반인들에게 컴퓨터는 먼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80년대 개인용 컴퓨터, PC가 만들어 지면서 컴퓨터가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PC는 1981년 삼보의 ‘SE-8001’이다. 텔레비전 수상기를 모니터로 사용하는 이 PC는 지금 보면 조악한 수준이지만 당시로는 큰 충격이었다.

1982년 삼성에서도 ‘SPC-1000’을 개발하면서 컴퓨터는 조금씩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컴퓨터로 업무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사람들은 컴퓨터가 인간의 일을 대신해 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80년대 후반, PC가격이 100만원대 이하로 떨어지면서부터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의 모습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달랐다. 그 전까지는 컴퓨터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컴퓨터가 대중화되자 사람들은 컴퓨터 사용법을 공부해야 했다. 동네마다 컴퓨터 학원이 생겼다. 직장인들은 일을 마치고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학원으로 지친 발걸음을 옮겼다. 인간을 위한 컴퓨터가 만들어지기를 바랐는데 오히려 컴퓨터를 위한 인간을 대량 생산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얼마 전, 거래하던 은행의 홈페이지가 개편 되었다. 생소한 사용 환경에 우왕좌왕 하다가 오류가 났다. 몇 번을 시름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상담원은 몇 가지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몇 차례 상담원이 시키는 대로 해도 계속 오류가 났다.

짜증이 난 나는 상담원에게 따졌다. “아니 가르쳐 주는 사람도 잘 모르는 것을 배우는 사람이 어떻게 이용합니까?” 상담원은 난처해하더니 전문부서를 연결해 주었다. 전문 상담원은 원격으로 오류를 수정해 주면서 그날의 소동은 끝이 났다.

일을 마무리하고 나자 상담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상담원 역시 복잡해진 홈페이지 때문에 고생하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머릿속에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개편했을까?’하는 의문이 맴돌았다. 물론 나날이 위협적으로 변하는 해킹과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 개편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지만 홈페이지를 개편한 기술자들은 고객들이 곤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일이 이렇다. 우리가 인정하기 싫어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있고, 바뀐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을 향해 힘차게 일을 추진한다. 그러나 자신이 바꾼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대중은 내가 바꾼 세상에 따라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바뀐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대중들에게 이런 변화는 지독한 강요이고 고통이다. 대중이 받는 강요와 고통이 과연 당연한 것일까?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무리 고결한 이상을 가졌다 하더라도 대중들이 고통 받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바뀐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 사람들을 위한 이상의 실현이 아니라, 자신이 바꾼 세상에 최적화된 인간을 양산하는 모습을 만들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이 대중의 괴로움을 정당화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지독한 오만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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