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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약가 인하, 상명하달식으론 산업 죽는다

우리가 보통 복제품, 가공품 하면, 가치를 크게 낮추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의 병을 고치고,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은 다르다.

오리지널 신약의 지식재산권에 대한 독점적 권리 부여 기간이 끝난 이후엔 많은 복제약(화학합성약품 ‘제네릭’, 바이오 ‘시밀러’)이 나오는데, 이 제네릭과 시밀러의 가치 역시 결코 무시되지 않는다.

처음 신약이 탄생되면 급한 환자, 돈 있는 환자, 선진국 환자들을 중심으로 혜택을 보다가, 제네릭이 나오기 시작하면 환난에 신음하는 보다 많은 인류가 질병에서 해방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숭고함을 잃지 않는, 제네릭의 가치이다.

쉬운 문자 한글 창제를 계기로 지식의 총아인 책들이 필사되고 복제돼 대중들에게 파급된 결과, 숱한 백성들이 문맹에서 해방되고 온 나라의 창의성을 크게 키우는 과정과 비슷하다.

또한 제네릭과 시밀러는 한국 제약의 현실적 토대와 미래형 신기술 개발의 마중물을 만들었다.

오늘날 국내 제약·바이오·헬스 기업들이 잇따라 기술수출에 성공하고 ‘신약 대폭발 직전’이라는 희망의 결실을 목전에 두게 된 것도 오리지널 개선형 복제약을 만들어 오리지널이 비추지 못한 어두운 곳까지 약을 수출, 수익을 키우고 연구개발 투자를 늘린데 따른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 계획을 짜는 요즘, 제약 바이오 업계가 고민이 많다. 올 봄에 발표된 약가 인하 정부안이 내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되면 매출과 수익 면에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여러 제약사가 함께 효율적으로 하던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자체적으로 했다는 시험자료를 제출하고 정부에 등록된 원료의약품 만을 사용하는, 2개 요건을 충족했더라도 기존 100원 받던 약값이 53원으로 줄어든다. 2개 요건 중 1개만 충족할 경우 45원을 받으며, 모두 충족하지 못하면 38원을 받게 된다. 1,2,3등으로 복제하지 않으면 반토막 나는 구조이다.

새 것부터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것까지 소급적용되는데, 2개 요건 모두 충족하는 기존 것은 4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는 내년 7월1일부터, 기등재 제네릭들은 3년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정부안 적용을 받는다.

이대로 두면 제네릭 사업을 포기하는 제약사가 속출할 전망이다. 바꿔 말해 매출과 수익이 줄면서 이제 막 소담스런 열매를 거두려는 제약업계의 새로운 투자 의욕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은 어느날 갑자기 백마 타고 온 신기술이 있어 이 광야를 비춰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우리 산업은 선진국의 기술과 부품을 들여와 조립한 뒤 재수출하는 ‘복제 생산’, ‘가공무역’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찬란한 꽃을 피웠다.

지금 우리 제약-바이오헬스 산업은 성장기이다. ‘약가 인하’ 정책의 대의는 인정하더라도 구체적인 시행과정에서는 성장기의 현실까지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질병퇴치와 환난구휼을 위해 제약사가 해당 사업을 접어도 안되는데, 사업을 접어야 할 정도의 상명하달식 약가 인하 정책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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