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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여년 전 주택개발지로 인기 높았던 동네는?
경성의 주택지/이경아 지음/도서출판 집

부동산 투기와 아파트값 상승 등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서울은 언제부터 개발되기 시작했을까. 조선시대만 해도 주택 공급은 짓고자 하는 사람과 지어주는 사람만 존재하는 일종의 주문생산방식이었다. 이런 수요공급 구조가 바뀐 건 일제강점기때다. 조선 500여년간 약 10만에서 20만 내외로 유지되던 한양의 인구 규모가 불과 30년 만에 100만에 육박하게 되면서 분양시대가 열렸다.

주택의 이상향을 구현한 다양한 문화주택지, 개량주택 등이 개발자와 건축가들에 의해 실험, 공급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 북촌과 가회동이 있다. 북촌은 지금 한옥마을로 불리지만 근대기 서양식 주택부터 일본식 주택, 절충식 주택, 근대의 다세대 주택이나 빌라까지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다양한 집이 망라된 주택 전시장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촌에는 최초의 서양식 주택인 두 동의 우종관 주택을 비롯, 윤치왕 주택, 윤치창 주택 등 서양식 주택 실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다.우종관 주택은 일본 유학파였던 우종관이 에지마 키요시라는 일본 건축가에게 의뢰해 지은 주택. 과거 정주영 회장이 거주하기도 했던 이 주택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상류층의 서양식 주택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를 보여준다. 모양은 서양식을 따랐지만 일본의 구조와 전통적인 온돌 구조가 섞인 삼중생활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브랜드 주택은 1934년 ‘건축왕’ 정세권이 자신의 회사 건양사에서 따온 ‘건양주택’이다. 개량·변형된 한옥을 집중적으로 지은 가회동 한옥단지가 대표적이다. 주 소비층은 도시로 이주한 지방 부호들이었다. 이곳은 “20세기 전반 한옥이 ‘도시 주택’으로 변화해 가던 모습을 가장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평가받는다.

이경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가 지난 10여년동안 일제강점기 경성의 주택의 양상과 변화를 꾸준히 탐색해온 연구결과를 담은 책은 당시 주택개발지로 인기가 높았던 동네들에 대한 보고가 눈길을 끈다.

그 중 후암동은 건강한 주택지로 일본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1930년 ‘조선과 건축’에 어느 일본인 부인이 기고한 글을 보면,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한 남촌에 속하는 인현동과 을지로에 살았을 때는 병이 들어 위험할 지경이었는데 후암동에 살면서 좋아졌다며, ‘공기가 상당히 좋은 이상적 주택지’로 꼽았다.

신당동 주택지는 ‘새로운 도시의 탄생’을 염두에 둔 국책사업으로 토지매각과 관련, 일본인 재벌 한 사람에게 경성부가 흔들린 희대의 사건 기록도 있다. 경성은 하루가 멀다하고 논과 밭, 공동묘지나 빈민주거지가 새로운 주택지로 바뀌었고 브랜드 주택들은 분양을 위한 팸플릿을 제작, 배포했다, 모델하우스 공개, 설명회, 원주민퇴출과 갈등 등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책은 주택개발의 당시 현황과 사건사고 뿐 아니라 건축가와 개발자들의 철학까지 두루 아울러 내고 , 사진을 풍부하게 담아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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