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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MB가 호평했다는 신격호의 ‘꿈’
MB “그 연세에 마천루 꿈, 대단한 것”
롯데월드타워에 남긴 신격호의 발자취
꿈과 희망 없는 우리사회에 교훈 던져

2014년 롯데월드타워 80층을 넘길때의 공사 모습(왼쪽)과 2015년 100층을 넘길때의 공사모습.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VIP가 오늘 신격호 회장을 칭찬하더라구요.”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2009년 초였을 것이다. 당시 이명박정부의 청와대 출입기자로 현장을 취재했는데, 모 비서관이 밥을 먹다가 이런 말을 넌지시 건넨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을 칭찬했다고? 이거 기사된다 싶었다. 귀를 쫑긋 세웠다. 모 비서관은 말을 이어갔다. “회의를 하는데 롯데월드타워 인허가 문제가 나왔는데, 난상토론이 벌어졌어요. 그런데 VIP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신격호 회장, 대단한 분 아닌가? 그 90가까운 연세에 하늘 높이 빌딩을 세우겠다는 꿈을 계속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 아닌가. 젊은이들도 힘든 일인데…’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신 회장의 꿈을 높이 평가한 것이지요. 그 대목에선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습니다.”

얼마 안있어 롯데월드타워는 정부 차원에서 건축 허가를 확정했다. 그 비서관이 이를 염두에 두고 언론플레이를 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롯데월드타워의 당위성을 이명박정부가 인정한 것을 설명하려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전 대통령이 ‘신격호의 꿈’에 후한 점수를 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나중에 청와대 모 수석 역시 “VIP가 젊은 이도 힘든 꿈을 신 명예회장이 갖고 있는 것은 배울만 하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고 한 것 보면 당시 청와대가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롯데월드타워는 신 명예회장의 평생의 숙원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겠다는 꿈을 일찌감치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롯데월드타워 사업은 노무현 정부때 공군의 반발로 막혀 있다가 이명박정부 들어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승인 과정에서 환경과 교통 문제로 서울시의 브레이크가 만만치 않았고, 100층 이상의 건물을 잠실에 지으면 서울공항에서 뜨는 공군 비행기와 충돌 우려가 있다는 군의 반대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런 롯데월드타워는 결국 2010년 11월 착공에 들어갔고 2016년 12월22일 완공됐다. 그리곤 2017년 2월 서울시로부터 최종 사용승인을 받은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555m, 123층 건물, 대한민국 최초의 100층 빌딩, 세계에서는 다섯번째로 높은 빌딩은 이렇게 탄생했다.

롯데월드타워 개장날, 사람들은 그래서 “신격호의 꿈이 이뤄졌다”고 했다. 사실 롯데월드타워 건설은 신 명예회장이 지난 1987년 “잠실에 초고층빌딩을 짓겠다”며 대지를 매입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언제까지나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고궁이나 보고 갈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큰 뜻으로 구상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관광 명소로 신 명예회장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최고 높이의 마천루’를 염두에 둔 것이다. 신 명예회장은 끈기있게 그 마천루에 대한 실현을 추진했고, 결국 그 개장까지는 30년이 걸렸다. 롯데월드타워가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꼭 가봐야 할 대표적 랜드마크로 우뚝 서고, 약 1만명의 상시고용 효과와 4조3000억원 수준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하는 관광명소가 된 것은 어쩌면 신 명예회장의 집요한 꿈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이런 신격호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오후 별세했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이 오늘날 대한민국 재계를 있게한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세월 앞에 인생무상이다.

신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껌 사업을 시작해 롯데를 국내 재계 순위 5위 대기업그룹으로 성장시킨 이다. 맨손으로 대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재계의 거인’으로 불린다.

이런 신 명예회장에 대한 재계의 추모 열기가 뜨겁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고인은 선구적 투자와 공격적 경영으로 국내 식품·유통·관광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추모했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칭만큼 한일 양국간 경제 교류에 힘써주신 신 명예회장의 타계는 우리 경제의 큰 아픔과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경제계는 고인이 평생 강조하신 ‘기업보국’과 ‘도전의 DNA’ 정신을 이어받아 기업가 정신을 높이고 우리 경제와 국가 발전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애도했다.

실제로 신 명예회장은 대한민국 재계와 경제에 ‘거인’으로 불릴만큼 크게 기여했다. 한일 경제계에 있어서도 활약이 컸다. 일본 교도통신이 “10대에 혼자 (일본으로) 출국해 일본과 한국에서 거대 그룹을 구축한, 재일 한국인 중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신 명예회장을 평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대한민국 재계에 큰 족적을 남긴 신 명예회장의 개인사(史)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일찌감치 후계 경영권을 정리하지 못하다보니 아들 간의 경영권 분쟁이 뒤따랐고, 건강 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지만 말년에 경영비리 혐의로 힘든 시기도 보냈다. 신 명예회장의 삶을 돌아보면 사람에게는 영광의 크기 만큼이나 고난의 시기도 반대급부로 뒤따른다는 인생법칙을 실감케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인의 일생 중 의미가 큰 것은 롯데월드타워에서 보여지듯 인간의 ‘꿈’에 대한 중요성과 삶의 의미에 대해 후학들에게 상징적인 교훈을 준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수년전 중고생 10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학생의 34.4%, 고등학생의 32.3%는 ‘장래 희망이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꿈이 없다는 학생이 중고생 10명 중 3명이 넘은 것이다. 수년전 설문이라 지금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이후 기성세대가 학생들에게 꿈을 불어넣어줄 사회적 시스템을 보완했다는 확신이 없기에 그 숫자는 더 많아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꿈이 점점 없어지는 청소년들이 꿈을 갖도록 희망의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 신 명예회장의 일생의 삶은 분명 교훈이 뚜렷하고도 성찰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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