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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선수들, 수능 1년 더 준비하는 기분”…쇼트트랙 진선유 [메달리스트]
메달리스트 인터뷰 ③ 진선유

〈편집자주〉 우리나라는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최초로 출전해 종합순위 3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10위 안에 진입하며 스포츠 강대국으로 도약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예정된 도쿄올림픽은 2021년으로 미뤄졌지만 [메달리스트]를 통해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세요. [메달리스트]는 한국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메달리스트를 만납니다.

[헤럴드경제] 유튜브에 올라온 한 쇼트트랙 선수의 활약 영상에서 네티즌들은 ‘이 선수’를 이렇게 부른다.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라고.

‘갓’, ‘레전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 선수’는 바로 진선유(32) 단국대학교 빙상 코치다. 진선유는 고등학생 시절 한국 여자 쇼트트랙 역사상 최초로 동계올림픽 3관왕을 차지했다. 또 2005·2006·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 종합 우승을 따내며 전이경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를 기록했다.

끝없는 훈련으로 완성한 아웃코스 추월

“새벽엔 스케이트 훈련, 오전엔 지상 훈련이 있었어요. 오후엔 다섯 여섯 시간정도 하고 많은 날에는 야간훈련까지 했죠. 그래서 저녁에는 거의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잠만 잤어요.”

진선유가 기억하는 선수 시절은 그야말로 훈련의 연속이었다. 힘들 때마다 그는 ‘언젠가는 빛이 날 날이 온다’는 생각으로 버텨냈다고 고백했다.

2005년 베이징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 종합 1위를 차지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진선유는 아웃코스를 공략한 추월을 주특기로 세계 무대를 휩쓸기 시작했다. 진선유의 아웃코스를 치고 나가는 탁월한 능력과 순간 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제가 앞에 있을 때 못 나오는 선수들이 있으면 그냥 앞에서 안전하게 경기를 했고 잘 타는 선수들이 많을 땐 그 선수들이 힘이 다 빠졌을 때를 노려서 마지막에 추월하는 경기를 많이 했어요. 제가 추월하고 다른 선수가 다시 저를 앞지르면 그게 더 지치는 경우거든요. 두 번 힘 빼기 싫으니까 마지막에 승부수를 던졌죠.”

한국 여자 쇼트트랙 최초로 동계올림픽 3관왕을 차지한 진선유. [진선유 제공]

한국 여자 쇼트트랙 최초의 올림픽 3관왕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진선유는 첫 번째 경기였던 500m에서 준결승에도 못 오르는 부진을 겪었지만 이어진 1500m, 3000m 계주, 1000m에서 우승하며 무려 세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성과를 거두고 금의환향했다.

“500m에선 실수를 했어요. 첫 번째 코너의 4번째 블록인 ‘아펙스 블록’ 전에 방해를 받거나 넘어지면 다시 출발하는데 제가 안 넘어지고 버텼거든요. 그사이에 다른 선수들은 이미 저 앞에 가 있더라고요.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감독님이 화가 나서 나가셨어요. 속으로 ‘아 큰일 났다’. ‘이따가 들어가기 싫다’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근데 저 같아도 바보 같아서 화났을 거예요. 다행히 그날 오빠들이 실수를 해서 제께 조금 묻혔어요.(웃음)”

진선유는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그가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1500m 경기를 꼽았다. 끝에서 두 번째로 달리던 진선유는 두 바퀴 반을 남겨놓고 아웃코스를 공략해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코치가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 나가기 좋은 타이밍 기다려야 될 타이밍 사인을 줘요. 저도 빨리 나가고 싶은데 사인이 안 나오니까 사실 속으론 불안해하고 있었죠. 금메달을 따면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안 나더라고요. 근데 1등으로 들어오는 건 무조건 좋아요. 그래서 최대한 1등을 하려고 노력을 하죠.”

진선유는 1000m 결승에서도 아웃코스를 공략해 3000m 계주 우승에 이어 세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중국 선수들의 견제로 추월하기 힘든 상황에서 진선유는 외곽으로 빠져 속도를 높이며 양양A를 제치고 마지막 바퀴에서 ‘라이벌’ 왕멍마저 제치면서 한국 쇼트트랙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1000m에서 우승한 진선유. [진선유 제공]

부상으로 인한 이른 은퇴, 후회는 없어

“올림픽 끝나고 바로 다음 달에 세계선수권대회가 있어서 쉬지도 못했어요. 코치가 나태해지면 안 된다고 해서 오히려 훈련을 더 시켰죠. 덕분에(?) 500m 빼고 전관왕 했어요.”

진선유는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2006·2007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모두 개인종합 1위를 차지하며 전이경의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집중 견제를 받던 진선유는 2007-2008 월드컵 6차 대회에서 중국 선수의 반칙에 떠밀려 발목을 다쳤다. 오른쪽 발목 바깥쪽과 안쪽 인대가 모두 손상되는 큰 부상이었다.

“중국은 반칙도 인정해주는 나라예요. 자국 선수를 위한 희생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에 코치, 지도자들이 시키더라고요. 반면 우리나라 선수들은 국제대회에서 손끝만 건드려도 실격을 당할 수 있으니까 스치지도 말라고 코치가 당부했죠. 이유는 우리나라 선수들한테 다 메달을 주기 싫어서? 라고 전해오고 있어요.”

진선유는 부상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한 채 2011년 은퇴했다. 비교적 이른 은퇴에 후회는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짧고 굵게 많이 힘들었어서… 그냥 훈련 부분도 힘들었는데 외적인 부분도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부상 아니었어도 오래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빙상계에서 한체대 출신과 비한체대 출신으로 나눠진 파벌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것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이다. 파벌은 한체대와 비한체대 사이의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에서 비롯됐다. 두 파벌 간 알력 다툼의 가장 큰 피해자는 선수들이었다.

선수에서 지도자로…“제자 모두 잘 됐으면”

2011년 동계체전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진선유는 은퇴 후 바로 모교인 단국대학교에 들어가 쇼트트랙 코치로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는 “선수일 때가 더 편한 거 같다”고 웃으면서도 제자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제가 가르치는 선수들은 다 애착이 가죠. 지도자가 되니까 제가 가르친 선수들은 다 잘됐으면 좋겠어요.(웃음) 묵묵히 따라줘서 고마워요.”

한편 진선유는 코로나19로 연기된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선수들은 올림픽에 맞춰서 식단부터 훈련까지 모든 걸 준비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올림픽이 연기됐지만 선수들 입장에서는 많이 당황스러울 것 같아요. 수능을 1년 더 준비해야 하는 느낌과 비슷할까요?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정지은 기자/jungj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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