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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통의 시간 견디며…랑랑 ‘바흐’를 치다
중국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
직업병 손목 건초염 3년간 ‘두문불출’
한국인 아내와 결혼…감정 더 안정적
30개 변주곡·90분의 장대한 연주
‘바흐: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 발매
“예술가는 사람들 마음에 위로 되어야”
화려했던 그의 연주엔 연륜과 깊이가 더해졌다. 그는 한국계 아내와의 결혼으로 “감정이 더 안정적이 되고,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2017년 4월이었다. 중국이 낳은 음악계의 슈퍼스타 랑랑(38)이 연주를 멈췄다. 국제무대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보인 그는 예정된 연주도 취소하고 ‘두문불출’했다. 그 당시 랑랑은 음악계에서 가장 ‘궁금한 존재’였다. 예기치 않은 비극. 배움을 멈추지 않는 피아니스트에게 찾아온 직업병.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습하다 손목에 건초염이 생겼다. 복귀는 1년 3개월 후였지만, 이전과 같은 무대를 다시 선보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지난해 6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선 한국인 어머니를 둔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와 결혼식이 올렸다. 그리고 2020년 다시 돌아왔다. 다사다난한 3년 사이 그는 ‘음악적 에베레스트’로 불리는 어느 정상에 올랐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랑랑은 “2020년은 너무도 힘든 만큼 특별한 해”라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70개의 공연이 있었는데, 모두 미뤄졌어요. 2020년은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달라졌죠. 피아니스트는 물론 모든 연주자에게 악몽이라고 말할 만큼 어려운 시기예요.”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랑랑은 새로운 과제에 도전했다. 쉼없는 날들을 보내는 연습벌레답게 그는 끊임없이 연주하고, 연습하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때에 “예술가들은 내면적으로 강해져야 하고, 계속해서 연습해야 하며, 새로운 곡을 익히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야 하니까요. 새로운 음반을 내고, 인터넷에 짧은 연주를 올리며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결속해야 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단단한 마음들은 20년에 걸친 고된 숙제를 풀어내는 데에 썼다. 이달 초 도이체 그라모폰을 통해 발매한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엔 피아니스트로의 랑랑의 생이 녹아있다. 깊은 고민의 결과엔 이전보다 성숙한 음악적 해석과 깊이가 담겼다.

바흐를 처음 만난 것은 열 살 때였다.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곡을 계기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기 시작했어요.” 아리아와 서른 개의 변주곡으로 이뤄진 90분의 장대한 피아노곡을 녹음하는 것은 랑랑에겐 “평생의 숙원”이었다고 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전형적인 바흐의 곡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반복할 수 있기에, 이 곡은 항상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반영하는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진수라고 생각했어요.” 피아니스트들의 대가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지켜보는 앞에서 열일곱의 랑랑은 그만의 해석으로 이 곡을 소화했다. 이미 극찬을 받았다.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빠뜨리지 않고 해석했다”는 평가였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갈 길이 멀다”고 느꼈다. 이 곡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공부와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로크 시대의 악기에서 연주된 방식과 해석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현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현대의 피아니스트들에게는 바로크의 음악을 만드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이에요. 그렇기에, 긴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정확한 스타일을 터득해야 해요.”

랑랑은 “이 곡을 연주할 때면 마치 레고 블록을 갖고 노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바흐는 자신을 도와준 러시아 외교관 친구를 위해 잠을 푹 잘 수 있는 아름다운 아리아 자장가를 만들어주려고 했어요. 그러던 중 아홉 개의 캐논이 떠오른 거죠. 같은 선율을 연주하는 것을 시작해 아홉 번째까지 각 변주가 한 음씩 더해졌어요. 바흐는 이를 작품의 뼈대와 피로 삼아 거대한 피라미드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어요. 모든 변주는 춤곡을 기반으로 했어요. 지그와 미뉴에트, 사라방드 등을 집어넣어 다이내믹을 살렸어요.”

랑랑에게도 이 곡은 “테크닉적으로나 음악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작품 중 하나”다. “25번째 변주는 제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어둡고, 수동적이고,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해석을 하는 데 있어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그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10대가 25번째 변주를 하는 것은 연주가 고문일 수 있어요. 도리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20년 넘게 배움의 과정이 지속된 이유예요.”

오랜 탐구의 방향은 분명했다. 랑랑은 “내 안의 바흐가 정말 바로크 시대의 것이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것이 첫 번째 원칙이었어요. 전 바흐를 바로크 시대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대의 누군가가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길 바랐어요.” 긴 시간이 지나, 한 장의 음반으로 완성됐다. 그는 바흐의 무덤으로 가서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오늘 제가 당신을 자랑스럽게 했다면 좋겠습니다.”

시간의 길이만큼 연륜이 더해졌다. 화려했던 그의 연주엔 여유와 온화한 감정의 변화들이 담겼다. “느린 변주에서 나오는 평온한 순간과 외로움, 변주를 반복할 때마다 한 걸음씩 언덕을 오르는 것 같은 고단함도 공유하고 싶었어요.” 연주엔 랑랑의 삶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영향을 미쳤다. “아내가 큰 안정감을 줘요. 결혼을 하니 감정도 더 안정적이 되고 있어요. 전보다 더 성숙해진 기분이에요.” 아내로 인해 한국과도 보다 가까워진 느낌이라고 한다. “장모님은 항상 맛있는 불고기를 해주세요.” 오는 12월엔 한국 공연이 예정돼있다. “꼭 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한국에 갈 때마다 멋진 한국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서려고 노력해요. 가수든, 연주가든. 젊고 능력 있는 음악가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이번에도 가게 된다면 콜라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꼭 찾고 싶어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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