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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광화문덕이다] 16화 도전은 나를 춤추게 하지
지친 이들을 위로해주려는 사장님의 마음, 을지로4가역 주유소 식당

"안 그래도 조금 전에 네 생각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건넨 형님으로부터 이렇게 답신이 왔다. 1년하고도 더 지났다. 형님께 연락을 못 드린 지가. 당시 팟캐스트를 한번 해보자고 만나서 이래저래 이야기 나누던 그때... 그러던 중 현실 속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난 어둠과 맞닥뜨리게 됐고 결국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마음의 여유가 없게 돼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나로 인해 좌초됐고, 난 그 이후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에 허덕이며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그런 나날을 보냈다.

"형 그때는 정말 죄송했어요"

"뭘 그래 신경 써. 나도 미안했지. 네가 가볍게 시작해보자고 했던 건데 내가 너무 부담을 많이 준 건 아닌가 싶기도 해"

나의 미안하다는 말에 형님은 오히려 자신이 미안하다며 내게 사과했다.

그날 오후 일정을 마치고 나니 형님이 생각났다. 혹시 간단히 티타임이라도 가능하면 뵈러 갈까 해 문자를 보냈다.

"형님 저녁 식사 약속있으세요?"

"저녁 9시에 녹음 일정이 있어서... 사무실 근처에서 먹고 이동하려고"

"저 마침 형님 회사 근처에서 일정이 끝났는데, 저랑 같이 저녁 간단히 하실래요?"

형님은 흔쾌히 응해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1년여 만에 마주 섰다.

"형님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오랜만에 뵈어서일까. 무척 여위셨다. 노란 반소매 티셔츠 밖으로 나온 팔이 앙상해 보일 정도였다. 형님께도 그동안 많은 일이 있으셨던 것 같다.

"뭐 먹으러 갈까? 을지로4가역 근처에는 오래된 식당이 많아. 깔끔한 곳보다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지. 김치찌개는 어때? 낙지볶음은?"

"전 아무거나 다 좋아요"

형님은 어딘가 생각나신 듯 걷기 시작했다. 을지로4가역 2번 출구를 지나 1번 출구 쪽으로 걷다 보면 우측으로 골목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작은 사거리가 나오는데, 그 왼편에 '식객 허영만 백반기행 주유소 식당'이라고 적힌 큼직한 안내판이 서 있다.

식당 실내에는 5개의 테이블이 놓여있고 벽에는 큼직하게 차림표가 붙어 있다. 가성비가 참 좋았다. 김치찌개를 비롯해 대부분의 식사류는 6,000원이고, 낙지백반과 대구탕, 불고기 1인분은 7,000원이다. 우리가 주문한 낙지볶음 '소'자는 2만 원이다.

"사장님 여기 김치찌개랑 공깃밥 부탁드려요"

"여긴 낙지볶음 먹는 곳이야~ 사장님 죄송해요. 여기 낙지볶음 '소'자 하나랑 공깃밥 두 개 주세요"

"약한 소주 한 병 드릴까요?"

"사장님 저희 금방 먹고 가야 해서요. 괜찮습니다 ^^"

문득 이곳 이름은 왜 '주유소 식당'이라고 지었을까 궁금해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가게 한 쪽에 걸린 여자 사장님 사진 아래 이렇게 소개 글이 적혀있다.

"주유소가 아닙니다. 인간에게 에너지를 주유하는 곳입니다. 낚지볶음이 그것입니다"

주머니가 얇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픈 마음이 담긴 이름... 가격도 저렴해 지나가는 이들이 잠시 들러 가볍게 소주 한 잔 걸치고 가면 딱 좋은... 하루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여기서 낙지볶음에 소주 한잔이면 이 정도만 한 운치도 없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낙지볶음 익혀서 드릴게요"

"넵 감사합니다"

사장님은 간단히 식사만 하고 가겠다고 하자,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잘 익혀주셨다.

사실 낙지볶음은 우리네 직장인들의 애환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서울에서 낙지볶음하면 무교동을 떠올리곤 한다. 1960년대 중반 지금의 광화문 우체국과 SK빌딩 그 주변에 술집거리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낙지볶음이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일잔을 기울이고 했는데, 당시 안주로는 참새구이 등이 있었다고 한다. 낙지 안주는 살짝 데친 낙지에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정도였단다. 그러다 어느 가게에선가 낙지를 고추장, 물엿 등으로 양념해 채소와 함께 매콤하게 볶아 내놓았고, 낙지볶음이 인기를 끌면서 무교동 주변 식당가에는 낙지볶음 안주가 대표메뉴가 됐다는 것이다.

눈물 쏟게 할 만큼 매운 낙지볶음의 유혹적인 맛은 현실 속 답답함을 매섭게 쫓아내며 잠시나마 고민을 잊게 해주니 예나 지금이나 매력 만점인 요리인 듯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교동은 도시개발에 착수하게 됐고, 무교동에 있던 식당들은 수송동으로 옮겨져 지금에 이르게 됐다. 현재 종로 르메이에르빌딩에서 종로구청으로 가는 길목에 몇몇 낙지볶음 식당이 있는데, 이들 식당 중에는 당시 이전한 곳도 있다고 한다. 60년대 이들이 먹던 낙지볶음 맛이 궁금하다면 이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낙지'는 주로 우리나라 서해안에 많이 분포돼 있다고 한다. 보양식으로 유명한데 특히 겨울철에 맛이 좋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지은《자산어보》에 보면 영양부족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소에게 낙지를 서너 마리 먹이면 거뜬히 일어난다는 글귀가 있을 정도라니...

이날 맛본 낙지볶음은 매콤함에 아찔함을 더해준 맛이었다. 정말 소주 한 잔을 기울이기에 최적화된 요리라고나 할까. 비록 이날 술을 마시진 않았지만, 매움은 소주를 부르고 알코올은 매콤함을 부르니 능히 환상궁합이라 부를 만했다.

"내가 콘텐츠 프로토타입으로 한번 이것저것 만들어봤는데 한 번 봐 줄래? 어떤 게 나아 보여?"

나이는 이제 40대 중반을 지나 40대 후반으로 향해 가고 있지만, 외형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형님이다. 늘 무언가 도전하는 것을 꿈꾸고,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모습이 늘 존경스럽다.

형님과 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늘 갈구하고 도전하려고 애쓴다.

"형 일단 어디에든 올려보세요. 어차피 제가 정답도 아니고 어떤 글이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폰 안에 간직하고 있는 것들을 세상 속으로 던져보세요"

형님은 늘 내게 말씀하신다. 나의 추진력이 부럽다고. 하지만 사실 형님이나 나나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부류다 보니 걱정이 많다. 지레 겁먹을 먹으니...

다만 내 경우에는 일단 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부딪혀보려고 노력한다. 내 머리로 예측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내가 기대하는 바대로 세상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실행으로 옮겨 부딪혀보는 수밖에... 사실 이런 나의 과감한(?) 행동에는 과거의 성공 경험이 근간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 시작했는데 다행히 운이 좋아서 사람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던 일들이 지금의 내 추진력을 만들어준 것이라 믿고 있다.

반면, 형님은 모든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구상하고, 혹시 일어날지 모를 가능성 등을 다 꼼꼼하게 따져본 뒤 실행하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 보니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걸 준비하면서 자신감은 점점 떨어진다. 게다가 심리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신 것 같다. 어쩌면 형님의 이런 두려움은 그가 살아오며 쟁취한 30대와 40대 성공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 잃을 게 없으니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이 더 크지만, 형님은 새로운 시도가 자신의 이력에 오점이 될까 두려워하시는 부분도 큰 것 같았다.

"자꾸 망설이게 돼"

매콤한 낙지볶음을 먹으며 연신 물을 들이켜는 나와 달리 형님은 차분하게 형님의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형님은 차근차근 매콤함과 밥의 적정한 비율을 맞춰가며 자신의 맞는 맛으로 만들어 음미하고 계셨다. 같은 낙지볶음이었지만 형님이 드시는 매콤한 낙지볶음은 전혀 사납지 않아 보였다. 형님은 꽤 친근한 사이로 느껴졌다.

"나도 너처럼 시작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

형님은 50대가 눈앞에 다가오니 두려워졌다고 했다. 그 누구보다 화려한 30대와 40대를 보낸 그이지만, 업계에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스펙을 쌓았고 지금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이지만...

〈나는 광화문덕이다〉

"그대의 치밀하고 치사한 계략은 하늘의 이치를 알았고,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마저 꿰뚫었구려.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할 줄 알거든 이제 그만 좀 작작해라". 사람에 속고 사람에 상처받으며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오늘 하루도 고군분투한다.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며 느낀 소중한 마음들을 이제 연재를 통해 기록하려 한다. 하늘은 삶을 귀한 덕으로 여긴다. 나는 광화문에 산다. 광화문덕이다. [편집자주]

그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이제 노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심리적 거센 압박이었다. 그는 안다. 열심히 올라온 만큼 떨어질 때 그 낙차가 더 크리라는 것을... 올라가는 건 어렵지만 내려오는 건 한순간이라는 것을...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는 것을 그는 주변을 통해 숱하게 봐왔다.

"사실 요즘 고민이 많아.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해야 하는 것 중에서 무얼 선택해야 할지. 아이는 커가고 경제적으로 퇴직 후의 삶을 걱정해야 하잖아. 다행히 아내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해보라고 응원해줘서 고맙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잖아"

"형님... 전 그래요... 내가 관심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돈은 벌어야죠.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내가 관심이 있는 것과 돈을 벌 수 있는 교집합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30대와 40대, 아직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50대... 이 시기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서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한다. 꿈과 직장이 일치하는 삶보다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힘든 직장생활, 온갖 암투가 벌어지는 곳. 능력보다는 이기적이고 윗사람들에게 아부하는 이들이 득세할 확률이 높은 곳. 그 안에서 버티며 견디는 삶을 살며 월급이란 걸 받아 가족을 꾸려나가는 게 우리의 삶이다.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건, 우리가 아직 젊고 우리 주변엔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료가 있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퇴직 후의 삶... 많이 외로워질 것이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이들은 점점 사회생활에서 자신을 격리하게 될 것이고, 사회생활의 반경은 좁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하루의 모든 시간을 나와 마주하게 될 것인데, 즐겁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한다면 삶이 너무 무료하지 않을까...

형님과 나의 대화는 쳇바퀴 돌듯 반복됐다. 형님은 다양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하고 싶지만 망설여져"로 귀결됐고, 난 끊임없이 "형 일단 시작해보세요. 그리고 그다음은 그때 고민하세요"라며 형님을 부추겼다.

잠시 대화는 멈췄고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사장님이 보인다. 그리고 사장님의 사진 아래 적힌 글자들...

"주유소가 아닙니다. 인간에게 에너지를 주유하는 곳입니다. 낙지볶음이 그것입니다"

사장님 마음이 느껴진다. 30여 년 전 사장님은 두려움 속에서 식당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고민했던 마음... 고민을 거듭하다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내 예산에 맞는 터를 알아보러 다니며 겪었을 그 마음... 가게를 계약하고 드디어 시작하게 됐다는 뿌듯함 속에서 뭉클하게 솟구쳤을 그 마음... 내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에너지 가득 담은 요리를 내놓아 그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겠다는 마음... 그 마음들을 말이다.

그리고 사장님은 30년이 넘도록 이 자리에서 그 마음을 이어오셨다. '주유소 식당'을 지키셨다.

사실 나의 바람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일단 첫걸음을 떼면 어떻게든 걸어가게 된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게 내 의지든 아니든...

사실 난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한다. 배탈이 나서 화장실로 가야해서다. 하지만 지금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매콤한 낙지볶음를 먹단지 아니면 굶어야 하는 상황이다. 나에게 바쁜 시간을 내어준 형님을 민망하게 할 수 없다. 일단 낙지볶음과 밥을 비벼 두 눈 꽉 감고 입안으로 크게 넣고 본다. 도대체 내 앞에 놓은 낙지볶음이 어떤 매콤한 맛이길래 이 지역 사람들이 계속 찾는 곳인지 경험해 보겠다는 도전 의지를 담아서 말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난 이 맛을 알 수 없으니 이 또한 내게 주어진 기회라 생각하며...

한 입 맛보고 나니 매콤한 맛이 너무도 매력적이다. 맵다고 물을 계속 들이켜면서도 또 비벼서 한 숟가락 입안으로 집어넣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제는 멈출 수 없이 계속 먹고 있다. 어느새 내 그릇은 말끔히 비워졌다. 매운 것을 잘 먹는 형님의 그릇보다 먼저 말이다...

글 = 광화문덕

정리 = 홍승완 기자

일러스트 = 이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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