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경의 현장에서] 주거사다리 걷어찬 자리에 남은 것

“주변에 1억원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나 보네” “평생 쓸 운을 날리다니 안타깝다”.

지난해 말 시세 대비 5억원가량 저렴한 분양가로 ‘로또’로 불리던 서울 은평구 ‘DMC파인시티자이(수색6구역 재개발)’ 무순위 청약에서 당첨된 20대 A씨가 계약을 포기했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30만 대 1을 뚫고 당첨됐는데 계약금 조달에 실패했다고 해서 관심이 집중됐다. 이 아파트 59㎡ 분양가는 5억2643만원, 계약금은 1억529만원이다. 단지 바로 옆 DMC롯데캐슬더퍼스트가 지난 7월 10억원에 실거래돼 최소 5억원의 시세차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댓글처럼 부모나 지인 중에 1억원을 현금으로 가진 사람이 없었을지라도 본인은 탄탄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본인의 신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면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다.

문제는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도 대출을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시중은행 신용대출을 옥죄었다. 또 신용대출로 1억원 넘게 돈을 빌린 후 규제지역에서 집을 사면 즉시 대출금을 회수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표면적으론 대출 규제지만 사실상 부동산 수요억제책이다.

이런 상황에선 현금부자들만 반사이익을 보게 된다. 직장인들이 근로소득만 차곡차곡 모아 서울에서 집을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020년 3분기 KB서울아파트 담보대출 PIR(price to income ratio)은 12.2로 나타났다. 서울에 거주하는 중산층이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려면 가족 전체가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12.2년이 걸린다. 이는 지난 2008년 1분기 해당 통계가 처음 작성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뿐만 아니라 KB주택구입잠재력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서울에서 중간소득 가구가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아 구입할 수 있는 아파트도 서울 집값 하위 10%(4억원가량)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아파트 평균매맷값이 10억원을 돌파하고, 6억원이 새로운 ‘서민아파트’의 기준으로 불리는 상황이다. 중위소득가구가 ‘영끌’해도 ‘서민아파트’ 한 채 마련이 힘들다.

결국 솟아날 구멍은 청약뿐이란 생각이었을까. 최근 국토부는 부정 청약 사례를 적발했는데, 이 중엔 자녀 2명이 있는 40대 여성 A씨가 입주자모집 공고일 한 달 전 자녀가 3명 있는 30대 남성 B씨와 위장결혼해 수도권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사례가 화제가 됐다. 둘은 당첨 직후 이혼했다.

분명 잘못됐고 두둔해서도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애초에 4인가족 만점(69점)조차 당첨안정권이 아니다 보니 이런 무리수도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청약에 당첨되기만 하면 수억원을 앉아서 버는데 이 욕망으로부터 초월한 이가 얼마나 될까. 정부가 ‘누구나 아파트에 살 필요는 없다’고, ‘빌라도 좋더라’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사이, 박탈감과 편법만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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