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행주기씨 백석헌 전경. [남도일보 제공]

장성과 가까운 광주 광산구 월봉서원에 가면, ‘월봉로맨스’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봉을 배향한 월봉서원은 국내외 방문객들이 다양한 선비놀이하는 대표적 K헤리티지 여행지이다.

26세 차이가 나는 퇴계 이황(1501~1570, 안동 도산서원)과 고봉 기대승(1527~1572) 간의 학문적 토론이 담긴 12년 100여통의 편지 우정이 바로 월봉로맨스이다. 네 가지 선한 본성과 일곱 가지 감정(4단-7정)이 분리된 것이냐, 아니면 조화로운 하나이냐를 놓고 시작된 편지 우정은, 토론, 반성, 희로애락, 건강 등 다양한 학문적, 인간적 교감으로 이어진다. 사물의 본질(理)과 현상(氣)을 하나로 볼 것이냐, 아니면 분리해서 볼 것이냐 등 한국철학 본류 논쟁으로 확장된다.

한국철학을 집대성한 것은 기정진(1798~1879)이다. 그는 ‘더위를 피해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사사롭게 의논하다’는 뜻의 저술 ‘납량사의(納凉私議)’를 통해 ‘이일분수(理一分殊:이는 하나지만 수많은 형태로 나뉨)’라는 말로 정리한다. ‘이(理)는 비교할 수 없이 존귀하며, 본체와 쓰임 모두를 구성한다’고 했다. 세상사 모두, 이의 존귀함 아래 본질의 구성에 관여한다는 것으로, 저마다 최선을 다해 기능하는 만물의 모습도 드러냈다.

12일 전남종가회와 남도일보 취재에 따르면, 기대승, 기정진은 행주기씨로 각각 광주, 장성문중이다. 영산강을 빚어내는 황룡강 동서의 같은 고을이다. 3000여년전 기자가 원류이고, 중시조 1세는 고려 인종 때 문하평장사를 지낸 기순우이다. 12세 기찬의 다섯아들 형, 원, 괄, 진, 준 중에서, 기묘사화 직후 서울을 빠져나온 둘째 기원은 장성에, 넷째 기진은 광주(현재 행정구역 기준)에 터 잡았다.

기원의 손자 15세 기효간은 보룡산 밑 아치실에 금강종가를 열었다. 하서 김인후의 제자로 선비인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그 동생 기효근은 해남현령으로 임진왜란을 맞아 사천대첩 때 선봉장으로서 공을 세웠다. 둘다 선무공신이다. 기대승은 광주쪽 기진의 둘째아들로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했다. 기대승의 아들 기효증은 김덕령과 함께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쳤다.

기정진은 장성쪽 24세손이다. 그는 진원면에 고산서원을 세웠다. 25세 기삼연, 26세 기우만(기정진의 손자)에 이어 27세 기산도 모두 의병장, 독립운동자였다. 문집과 고문서 4000여점, 서훈된 근현대 독립유공자만 22명으로, 평화땐 학문사상의 중심, 누란땐 의병장들이었다. 함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