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쩍은 정의…법률에 올바름을 기대하지 마라
법률은 정의 ·도덕과 무관, 양면성 지녀
마사비, 법 상식 깬 도발적 질문 눈길

자유· 평등· 권리…‘자명한 것 의심하라’
도덕은 법률로 강제할 수 있을까?
‘건강증진법’ 되레 개인 자유 구속
‘최대다수 최대행복’은 선별사상 둔갑
법 의존성 탈피해야 인간사회 보여
“법화(法化)가 초래한 최대의 폐해는 사람들이 법률을 방패 삼아 타자와 대립적으로 관계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을 만들어낸 점일 것이다.”(‘위험한 법철학’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데 이어, 최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코로나 19로 더 격차가 벌어지면서 다시 정의와 공정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그 이름밑에서 자신의 이익을 정당화시키고 관철시켜왔음을 목도하면서 사람들은 정의에 수상쩍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법학부 스미요시 마사미 교수는 ‘위험한 법철학’(들녘)에서, “법률은 정의·도덕과는 원칙적으로 무관한 룰”이라며, 정의의 표상처럼 여겨지는 법의 허점과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 보통사람들이 철석같이 믿는 상식을 뒤흔들어 놓는다.

저자는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법이 증가하면서, 소송사회가 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법이 일상생활 하나하나를 규제하면서 소통이 불가능해지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음을 일본의 실제 사례를 들어 지적하는데 우리도 다르지 않다. 이럴 경우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사적 자치와 자유, 상호 신뢰의 건강성이 무너지는 건 당연하다. 저자는 “법률에 과도하게 의지하는 것은 인간의 힘을 쇠퇴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 고전적인 질문에 저자의 답변은 쉽다. 일상에서 느끼는 부정에 대한 분노의 감각에 있다. 즉 어떤 룰에 따라 모두가 게임을 하고 있는데 자신이 이기기 위해 혹은 이익을 위해 그 룰을 왜곡하는 경우에 사람들이 느끼는 올바르지 않다고 느끼는 감정, 이 부정을 막는 것, 바로 잡는 것에 정의에 대한 공통 이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정의론은 존 롤즈의 ‘정의 2원리’다. 제1원리는 사상·신앙,언론·집회·결사, 소유권 보유, 거주 이동 등의 자유권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보장될 것을 요구한다. 제2원리는 제1원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이미 존재하는 빈부격차나 취직·진학에서의 불평등을 수정하기 위한 것으로, 사회에서 최악의 처지에 놓여있는 불우한 사람들이 최대 이익을 얻도록 한다. 즉 고소득자는 고액세금을 내고 그런 이후에 자신의 능력으로 더 벌 수 있다. 이렇게 누진과세와 빈곤층에 대한 지원정책이 정당화된다.

롤즈에 반발하며 등장한 로버트 노직의 정의론은 개인의 자유가 우선시된다. 존 로크를 계승한 노직은 개인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이 바라는 삶의 방식을 관철할 자유가 있으며, 개인은 자기 자신의 신체능력 그리고 재산에 대해 신성불가침의 배타적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타인이나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사회의 약자구제의 경우, 소유를 침해하는 구조가 아닌 자발적인 증여를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 노직은 개인의 재능을 몸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본인에게 속한다고 봤다.

하버드대 교수인 이 둘은 뜨거운 논쟁을 남긴 채 2002년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법철학은 법을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 즉 자명하다고 여기는 것을 의심하고 다시 묻는 것이다. 이를 통해 법이 일상과 삶을 어떻게 규제하는지 제대로 살피는 게 가능하다.

가령, 특정 도덕을 법으로 강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저자는 ‘오지랖 넓은 돌봄법’으로 불리는 일본의 건강증진법을 예로 든다. 국민은 건강한 생활습관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건강상태를 자각하면서 건강증진에 노력해야 한다(제2조)는 게 바로 건강증진법. 저자는 이런 식으로 특정한 생활방식을 명령하는 법률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살든 개인의 마음이며 그 사람의 인생 목적에 따라서는 건강증진에 힘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2018년 일본 신칸센 전차 안에서 승객을 갑자기 손도끼로 공격한 자를 위험을 무릎쓰고 몸으로 막아섰다가 숨진 남자가 있었다. 이런 숭고한 의무감으로 구조행동을 하는 건 일반인으로선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이럴 때 누구나 적극적으로 구조해야 한다는 법률이 생긴다면 어떨까? 1964년 뉴욕에서 실제로 그런 법률이 시행되려 한 적이 있었다.

대중의 감정에 기초한 공공도덕을 확정하고 이를 법으로 강제하려는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기 마련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헹복을 내세우는 공리주의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2009년 일본의 수험 기간에 인플루엔자가 유행, 한정된 백신을 누가 맞아야 하는지 논란이 일었다. 후생노동성은 우선순위를 정했는데, 현역 고등학교 3학년생을 우선하고 재수생은 후순위로 밀렸다. 저자는 “애초에 사람들을 평등하게 보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공리주의가 사회 전체의 불이익을 최소한으로 하자는 발상으로 전환되는 순간 불이익을 당해야 할 사람들을 찾아내는 선별사상으로 바뀌고 만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유는 어디까지 인정되는가’’동물에게 권리가 있는가’‘개그에 저작권을 인정한다면?’ 등 흥미진진한 사례와 질문으로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는 법철학 얘기는 정의와 권리, 의무, 자유, 평등 등 법체계의 기초 원리와 이를 지지하고 있는 우리의 상식과 습속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위험한 법철학/스미요시 마사미 지음, 책사소 올김/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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