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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四色] ‘아마도’가 절실한 사회

대화를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말을 들을 땐 정말 화가 난다. 자신의 입장과 다른 상대에 대해 ‘벽을 쌓고’ 문을 닫아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언론도, 개인도 제한 없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대통령을 ‘간첩’이라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격해도 죄가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진영 논리에 대입하면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의 장벽이 높음을 체감한다. 오로지 찬성-반대, 공격-방어만 있을 뿐이다. 반대 의견에 대해서 무차별 공격, 혐오만이 지배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징계할 때 이 진영 논리는 극에 달했다. 철저하게 귀를 닫고 자기의 말만 배설하는, 언어가 있되 언어의 그물망이 완전히 찢겨 그 기능을 상실한 극단적인 이분법을 경험했다.

‘블랙스완’을 쓴 나심 탈레브는 그의 다른 책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에서 “나는 미국 연방 수준에서는 자유주의자로 통한다. 내가 사는 주(州) 수준에서는 공화당 지지자로 통한다. 내가 사는 도시 수준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로 통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는 사회주의자로 통한다”는 한 형제를 언급하면서 정치적 성향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풍자한 바 있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강력한 진영 논리만이 득세하고 있다. 완전히 잘못된 기사에 대해 바로잡으려는 댓글 하나 다는 것도 두려운 현실이다. 댓글을 쓰려다 멈칫멈칫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인사청문회를 앞둔 후보자 시절, 모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변 후보자가 1991년 2월 9일 6개월짜리 석사장교를 마치고 왜 13개월이 지나서야 박사과정을 시작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 언론도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인용 보도했다. ‘석사장교’는 ‘병역 특혜’ 논란은 있었지만 ‘박사과정’ 입학과는 아무도 관련이 없는 제도다. 주변에 석사장교를 마치고 바로 취직을 한 지인들도 숱하게 많다. 댓글은 변 후보자를 내정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했다. ‘석사장교 제도와 박사 입학은 전혀 별개’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고 싶었지만 공격받는 게 두려워 그만뒀다. 그러면서 자꾸만 카프만의 ‘시골의사’에 나오는 소년의 상처가 떠오른다. “굵기와 길이가 내 새끼손가락만 하고 그 자체가 장밋빛이면서 더군다나 피까지 묻어 있는 벌레들이 상처의 안쪽에 달라붙은 채 하얀 머리와 수많은 다리를 움직여 밝은 곳으로 나오려고 꿈틀거린다.”

말의 그물망이 찢어지면 힘의 논리가 등장한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적 논리가 고개를 내민다. 나와 다른 사유를 참지 못한다. 최근 정경심 교수에 대한 1심 판결이나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집행정지 소송 인용(認容)에서 보듯 극심한 분열을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있다.

이 분열의 사회에 필자는 데리다가 말하는 ‘아마도’라는 범주가 치유의 작은 씨앗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데리다는 “아마도의 사상은 아마도 사건에 대한 유일하게 가능한 사상을 개방한다”고 주장한다. 참된 것이 거짓일 수 있고, 거짓된 것이 참될 수 있다는 우발성의 논리를 받아들일 때 타자를 수용하는 개방성이 생기지 않을까. 어떤 것은 최악의 것일 수도 있지만 이처럼 최악의 것조차 도래할 수 있게 개방할 때 비로소 긍정적인 어떤 것이 도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나지 않을까.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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